안경 너머의 진실
1화

안경 너머의 진실

메타가 미래를 발표했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발행합니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마다 다가오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혁명이 오고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디지털 대량 생산은 물질 대량 생산처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는 AI가 가져올 경제, 사회, 문화 변화의 징후를 포착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두꺼운 뿔테 안경으로 아이폰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메타의 계획에 관해 살펴봅니다.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메타 커넥트 2024에서 AI 기술과 AR/VR 기기를 발표했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개발 중인 ‘오라이온(orion)’이다. 출처: CNET

변화와 징후


변화: 메타가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커넥트 2024’를 열고 AR 디바이스, ‘오라이온(orion)’을 발표했다.

징후: 가상 세계를 지배하는 메타는 생성형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고자 한다. AI를 활용한 정보를 현실에 덧입혀 보여주는 오라이온이 그 시작이다.

메타의 AI


2023년 3월 1일,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메타도 AI 경쟁에 참여한다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저커버그가 명석한 CEO임은 분명하지만, 당시까지 AI 관련된 그 무엇도 출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타는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회사 이름까지 변경하며 메타버스에 사운을 걸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사라졌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 미국 연준이 기준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서 기술주 하락장도 시작됐다. 바닥을 친 줄 알았더니 지하실도 있었다. 애플의 광고 정책 변화로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 광고 수입이 급감한 것이다. 결국 2022년 11월, 메타는 직원 만 천여 명을 정리해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메타의 AI 선언이 허풍처럼 들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꽤 일찍, 저커버그는 AI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2013년 ‘AI 4대 천황’으로 꼽히는 얀 르쿤이 페이스북으로 자리를 옮겼다. 페이스북이 자체 인공지능 연구소, FAIR(Facebook AI Research)를 설립하면서 영입한 것이다. 저커버그 혼자 선구안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2012년,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인 이미지넷(ImageNet) 경연대회에서 인간의 신경망을 본뜬 딥러닝이 대중에게 알려진다. 딥러닝이 미래임을 알아차린 실리콘밸리의 선구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을 창업한 레드 페이지까지. 마크 저커버그도 영민함으로 이들에게 밀리는 인물은 아니다. 저커버그는 시대를 목격했고, AI 개발은 당연히 그의 과제가 되었을 뿐이다.

지난 25일, 메타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메타 커넥트 2024’에서 과제 중간 평가에 해당하는 발표가 있었다. 메타는 라마(Llama) 3.2를 발표했다. 음성과 이미지도 인식하는 멀티모달 모델이다. 메타의 AI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메타가 가진 플랫폼에 녹아들었다. 사진 속 신발이나 바지 색깔을 바꾸거나, 인플루언서를 똑 닮은 AI 아바타가 인플루언서 대신 저커버그와 대화를 나눈다. 레이벤과 협력해 내놓고 있는 스마트 안경, ‘레이벤 메타’를 쓰니 스페인어와 영어가 실시간으로 통역된다. 오픈AI는 GPT-3.5를 개발한 뒤, 어떻게 사용될지도 잘 알지 못한 채 챗봇의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3에서 4로 완전한 업그레이드도 되기 이전, 3.5의 미완성 상태였다. 메타는 다르다. 가상 세계의 영토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업체다. AI를 어떻게 쓸지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메타의 디바이스


메타가 AI 시대에 이미 준비된 기업이라는 증거는 수익이다. 커넥트 행사에서 메타는 100만 명 이상의 광고주가 메타의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달 1500만 개의 광고가 이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광고 효과도 유의미했다. 생성형 AI로 만든 광고가 클릭률은 11퍼센트, 전환율은 7.6퍼센트 더 높았다는 것이다. 물론 메타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메타는 AI로 돈을 버는 기업이다. 지금 AI 업계의 가장 큰 고민에 대한 답을, 메타는 이미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AI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행사장에서, 그리고 커넥트 행사와 함께 각종 IT 매체, 인플루언서 등을 통해 공개된 메타의 AR 디바이스, ‘오라이온(orion)’이야말로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오라이온은 쉽게 말해 현재까지 선보인 AI 에이전트 기기 중 가장 진보한 형태다. 안경을 쓰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 오라이온도 마찬가지로 렌즈 너머의 세상이 온전히 보인다. 그런데 그 세상 위에 내게 필요한 정보가 덧입혀진다. 식탁 위에 놓인 식재료를 보면 이를 활용한 레시피가 뜬다. 외국어의 번역도 현실 위에 덧입힌 형태로 볼 수 있다. 문자 메시지나 화상통화, 동영상 감상 등은 너무나 기본적인 기능일 뿐이다. 그걸 현실 세계에 투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다. 아직은 투박한 모양이지만 착용한 채 길을 걸어도 전혀 부끄럽거나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뿔테 안경이다.

그런데 ‘글라스’라고 칭하지 않고 ‘디바이스’로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손목 밴드와 소형 무선 컴퓨터 장치까지 함께 세트로 갖춰야 온전히 작동한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입력은 손목 밴드와 안경이 받는다. 사용자가 동전을 튀기는듯한 손동작을 하거나 손가락을 맞부딪치는 등의 동작을 손목 밴드를 통해 감지한다. 안경은 사용자와 함께 외부의 소리와 영상을 동시에 인식한다. 사용자의 눈 동작으로 스크롤 등의 기능도 수행한다. 마치 이마를 찡그리며 고민에 잠기듯, 눈으로 거리의 간판을 훑으며 길을 찾듯, 오라이온은 사람의 작은 손동작, 눈짓에 따라 함께 생각한다.

메타의 세계


오라이온 데모 영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애플의 비전 프로가 떠오른다. 2023년 6월, WWDC에서 관련 내용이 공개되자 기대는 치솟았다. 애플이 다시 한번 미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올해 초 실제 제품을 받아 사용한 사람들은 분명 미래를 봤다. 그런데 그 미래는 일상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 무겁고, 어디 쓰고 다니기엔 부적합했다. 아이폰과는 달랐다. 한번 손에 쥐면 365일 24시간 절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기계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라이온은 다르다. 365일, 24시간 함께할 수 있다. 포스트 스마트폰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 어떤 정보든 필요할 때 검색해 사용할 수 있는 시대, 누구와도 연결되어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 시대의 물결에 올라타 소셜 미디어라는 온라인 세계를 일구어낸 기업이 바로 메타다. 현실 세계에는 수많은 권력자와 갑부가 존재한다. 하지만 온라인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라는 세상이 존재한다. 메타는 그 세상의 영향력을 키우고자 한다. 현실 세계와 더 많이 혼합하고자 한다. 메타의 미래가 메타버스인 이유다.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메타 퀘스트, 대중화에 실패한 레이벤 스마트 글래스 등을 꾸준히 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메타가 오픈소스 AI와 오라이온의 성공적인 결합을 보여준다면, 아이폰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삶의 방식을 바꿀 것이다. 여행지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양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그런 삶이 시작된다. 그 차이를 경험하면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디바이스를 계속해서 구입할 수밖에 없다. 아이폰처럼 말이다. 입거나 쓸 수 있는 컴퓨터를, 특히 AI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기를 먼저 개발하고자 하는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까닭이다. 메타는 가상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쌓아온 상상력으로 현실 가능성이 충분한 미래를 내놓았다. 이제 스마트폰, 그다음의 세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시대를 앞서 메타버스가 일상이 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빈민가의 소년도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절대 강자로 살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대다수가 가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물론, 현실이 늘 영화처럼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상의 이미지와 소리가 언제든 현실에 덧입혀질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은 풍경에 필터를 덧씌워 행 복을 가장할 수 있다면, 인간은 쉬이 유혹당할지도 모른다. 오라이온이 보여준 것과 같은 AR 안경은 2027년 출시될 전망이다. 영화의 상상은 종종, 현실이 된다.
 
신아람 에디터
#AI #aiwontsaveus #소셜미디어

2화 ‘This Week in AI’에서는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AI 뉴스 3가지를 엄선해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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