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투자의 비극
1화

알고리즘 투자의 비극

기계가 굴리는 돈이 너무 많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발행합니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마다 다가오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혁명이 오고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디지털 대량 생산은 물질 대량 생산처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는 AI가 가져올 경제, 사회, 문화 변화의 징후를 포착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전 세계 주식 시장을 끌어내린 2024년 8월 5일 ‘블랙 먼데이’의 진범을 밝힙니다.
 
짐 사이먼스는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시장을 해독했다. 2015년, TED에서 그의 인생에 관한 대담을 나눴다. 출처: TED

변화와 징후


변화: 최근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를 때 너무 오르고 내릴 때 너무 내린다. 지난 8월 5일도 그랬다.

징후: 기계가 굴리는 돈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단, 생성형 AI가 그 경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퀀트 투자


수학이 돈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 증명한 사람이 있다. 헤지 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를 설립한 짐 사이먼스 얘기다. MIT에서 공부하고 스물다섯 나이에 하버드 교수가 되었다. 냉전 시대에는 암호 해독 부서에서도 일했다. 무엇보다, 20세기 이후 우주를 설명하는 기본 이론이 된 ‘끈 이론’의 수학적 토대, ‘천-사이먼스’ 이론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사이먼스는 엄청나게 뛰어난 수학자였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진정으로 풀고 싶었던 문제는 다름 아닌 ‘돈’이었다. 트레이더의 ‘감’에 의존하거나 기껏해야 시장의 분위기, 기업 보고서 등에 의존했던 월스트리트는 사이먼스 입장에서 너무 ‘비과학적’인 곳이었다. 사이먼스는 금융 시장에 패턴이 있다고, 수학적 모델을 통해 그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증명되었다. 그의 투자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돈 버는 문제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벌었느냐로 따져야 한다. 사이먼스가 설립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대표 상품은 ‘메달리온 펀드’다.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0년 동안 수수료를 떼고도 39퍼센트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워런 버핏의 펀드 수익률이 20퍼센트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사이먼스의 자산도 3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대단한 수치를 쌓아 올린 것은 수학이다. 사이먼스의 회사가 영입한 인재들은 남달랐다. 월스트리트의 다른 금융 회사들이 하버드 MBA 출신들을 끌어모으고 있을 때, 사이먼스는 수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프로그래머 등을 채용했다. 이들은 대다수의 학자가 ‘딥 러닝’이라는 단어를 들어보기도 전부터 투자에 딥 러닝 방식을 응용했다. 1980년대부터 방대한 양의 과거 시장 데이터를 모아 복잡한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시장의 소음 속에 숨겨진 ‘패턴’을 찾아낸 것이다. 패턴을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1, 3, 5 다음에는 7이라는 것을 읽어내듯,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는 시장을 읽었다.

사이먼스는 투자를 수학과 예측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이 퀀트(Quant) 투자다. 통계와 알고리즘으로 특정 주식의 가격을 기계적으로 추정한다. 이제는 주류 투자 방식이며, 주식 트레이딩 시장의 3분의 1가량이 이 방식을 따른다. 선물이든, 옵션이든, 주식이든 프로그램이 팔고 산다. 그 알고리즘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은 매매, 매도 주문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다. 프론티어 생성형 AI 모델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 경제를 흔드는 투자가 ‘블랙박스(Black Box)’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파편적인 정보다. 예를 들면, 알고리즘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변수는 대체로 현재의 ‘가격’이라는 점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이 지난 8월 5일, ‘블랙 먼데이’를 불러왔다.

AI 거품론


아시아 주식 시장이 일제히 폭락했던 지난 월요일, 2024년 8월 5일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단 하루 만에 코스피 시가총액은 192조 원, 코스닥에서는 43조 원이 증발했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12.4퍼센트 포인트 하락해 1987년 이후 최대 폭락을 기록했고, 대만 자취안지수도 8.35퍼센트 포인트 하락했다. 뉴욕 증시도 주요 지수들이 3퍼센트 안팎의 폭락세를 기록하며 주저앉았다. 원인이 몇 가지 꼽힌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그리고 AI 거품론 등이다. 이 중 AI 거품론은 그동안 미국 증시 호황을 이끌어왔던 생성형 AI의 발전이 곧 꺼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 1990년대 미국은 IT 혁명을 통해 급격한 생산성 향상을 경험했다. 같은 물건을 더 싸게 만들 수 있게 되니, 물가는 떨어지고 경제 성장률은 올랐다. 2023년, 챗GPT의 등장으로 생성형 AI가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 믿음은 기대가 되었다. 그 기대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중심으로 한 기술주들을 중심으로 한 주식 시장 호황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불길한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 골드만삭스는 AI가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쿼이아 캐피털은 AI 투자는 급증하는데 그로 인한 수익은 미비해 기업들이 재무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충족되지 못한 기대는 거품이다.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 IT 혁명 이후 닥친 IT 거품 붕괴처럼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곤 한다. 시장의 두려움이 이해되는 까닭이다. 다만, 정신없는 월요일이 끝날 때쯤,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악재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끔찍한 폭락을 불러올 정도인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거대 금융 회사가 부도를 맞은 것도 아니다. 그저 불안한 시그널이 감지되었을 뿐이다. 오픈AI가 망한 것도 아니고 엔비디아의 칩은 여전히 물량이 없어 못 판다. 대체 왜 이렇게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일까. 이번 블랙 먼데이의 범인은 여럿이다. 하지만 시장이 너무 무섭게 출렁인 까닭을 찾자면 퀀트 투자다.

기계 투자의 특성


투자 방법에는 기본적 분석(Fundamental Analysis)과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이 있다.
  • 기본적 분석은 경제 전반, 산업, 기업의 주요 지표를 분석하여 특정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계산한다. 지정학적 긴장, 기업 문화, 브랜드 인지도 등 수치화하기 힘든 정성적 지표도 고려한다.
  • 기술적 분석은 차트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현재의 가격, 일정 기간의 주가 추이 등을 바탕으로 단기간의 주가 추이를 예측한다.

퀀트 투자는 수학으로 패턴을 읽어내 향후 가격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기술적 분석에 가깝다.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순자산비율(PBR), 주당순이익 (EPS) 등의 지표도 물론 참고한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재의 가격일 수밖에 없다.
  • 주가는 시장 이슈, 기업의 경쟁력, 정치적 변수 등의 정성적 요소를 이미 반영하고 있다. 즉, 기본적 분석에 따른 투자 상황이 주식의 가격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얘기다.
  • 가격 정보뿐만 아니라 각종 지표도 현재의 값을 넣어야 미래의 값이 나온다. 알고리즘의 기본적인 원리다.

퀀트 전략을 쓰는 대형 헤지펀드 회사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매매, 매수를 결정한다. 사람은 의심하거나 머뭇거린다. 알고리즘은 기계다. 기계는 입력값에 따라 출력을 낼 뿐이다. 문제는 기계가 굴리는 돈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알고리즘 거래 규모는 이미 2021년 160억 달러를 넘어섰다. 연평균 14퍼센트씩 성장해 2031년에는 6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결국, 오르는 장이 오면 거대한 자금이 한꺼번에 오르는 쪽에 베팅하고 내리는 장이 오면 반대의 경우가 발생한다. 진폭이 커진다. 이걸 시장에서는 ‘변동성이 커진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8월 5일의 상황처럼 말이다.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계가 굴리는 돈의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지금보다 심한 변동성 장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미래의 인공지능은 좀 다른 방식의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수학의 산물에 해당하는 현재의 퀀트 투자는 주로 수치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거대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하는 AI의 경우 뉴스 기사, 소셜 미디어 게시물 등 서술적인 데이터도 분석할 수 있다. 경영진의 발언, 시장 관련 뉴스, 산업 트렌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기본적 분석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해 투자 전략을 세우게 된다. 천재 수학자가 만들어낸 퀀트 투자는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다시 인간의 방식으로 회귀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유


외관상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의식이 없는 존재를 ‘철학적 좀비’라 칭한다.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이 개념을 이용해 의식의 본질에 관해 논한다. 철학적 좀비가 가능하다면, 의식이 단순한 물리적 과정 이상임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철학적 좀비와 함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성형 AI’라는 존재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수익률을 보장하는 퀀트 투자 알고리즘도 어떤 면에서는 철학적 좀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기계 존재의 손에 전 세계 경제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번에 목도했다. 우리의 운명이 혹시 좀비의 손에 달린 것은 아닐까.
 
신아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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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This Week in AI’에서는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AI 뉴스 3가지를 엄선해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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