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정전 경보
1화

AI 정전 경보

반도체보다, 개발자보다 전기가 경쟁력이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발행합니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마다 다가오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혁명이 오고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디지털 대량 생산은 물질 대량 생산처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는 AI가 가져올 경제, 사회, 문화 변화의 징후를 포착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생성형 AI로 폭발한 전력 수요와 이에 대응하는 빅테크의 방법론, 한국의 시스템을 이야기합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AI의 진정한 장애물은 에너지라고 주장했다. 출처: Dwarkesh Patel

변화와 징후


변화: 생성형 AI로 인해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는 56조 원 넘는 전력망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전은 40조 원대 누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징후: AI 업계는 싸고 깨끗한 전기를 원한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칩과 사람뿐만 아니라 전기를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전력 생산과 공급 시스템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

PUE 1.0


스웨덴 룰레오라는 도시는 좁고 깊은 보트니아만을 사이에 두고 핀란드와 마주하고 있다. 평균 일 최고 기온은 섭씨 6도 정도, 여름에도 20도를 넘는 일이 별로 없다. 겨울에는 영하 40도를 밑도는 혹독한 추위가 닥친다. 이상 기후가 아니라 원래 그럴 법한 도시다. 룰레오는 그린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북극에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유럽 대륙 최북단은 아니지만, 메타의 선택을 받기에는 충분히 추운 도시다. 메타는 스웨덴의 이 차가운 도시에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를 건설했다.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내부도 각별히 신경 썼다. 이케아와 협업해 내부 공간 구성을 쉽게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공기 순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메타뿐만이 아니다. 구글은 아예 열 방출을 잘하는 신소재를 만들었다. 자사 데이터센터에 사용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센터를 바닷속에 구축하는 실험에 나섰다. 빅테크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PUE를 맞추기 위해서다..
  • PUE는 Power Usage Effectiveness, 즉 전력 사용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데이터센터가 사용한 전체 전력을 순수하게 컴퓨터 서버 가동에만 사용된 전력량으로 나누어 산출한다. PUE가 2.0이면 필요한 전기의 2배를 썼다는 뜻이다. 사용한 전기의 50퍼센트는 비효율이라는 얘기다.
  • 1.0은 불가능하다. 효율 100퍼센트는 이데아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비효율은 서버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주로 발생한다. 데이터센터의 열을 식히기 위해 전력이 사용된다.
  • 2022년 기준 메타의 데이터센터 평균 PUE는 1.08이다. 구글은 평균 1.10, 마이크로소프트는 1.12 수준이다. 보통은 데이터센터에서 서버가 쓰는 전기만큼을 냉각에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빅테크들의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 데이터센터의 PUE는 3.13이었다.
그런데도 PUE를 더 낮추려고 애쓰는 이유가 있다. 이미 빅테크들이 전기를 너무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JP모건의 추산에 따르면 구글, 아마존 클라우드, 메타, 마이크로소프트는 2022년 콜롬비아만큼의 전기를 사용했다. 챗GPT가 판을 뒤집기 전에도 빅테크는 이미 한 국가만큼이나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성형 AI의 시대가 도래했다. 구글에서 간단한 검색을 하면 0.3Wh의 전기가 사용된다. 챗GPT에서 검색하면 10배의 전기가 사용된다.

하이퍼스케일 친환경


엄청나게 복잡한 연산이 필요한 서비스가 갑자기 등장해 전 세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컴퓨팅 파워, 서버가 필요해졌다. 때문에 빅테크들은 사람을 잘라 돈을 아껴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형국이다. 그중에서도 서버랙 10만 대 이상의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데이터센터에 집중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는 2028년까지 1000억 달러를 투자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아마존도 향후 15년간 데이터센터 건설에 1500억 달러를 쓴다.

더 크고 더 집약적인 최신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전기도 더 많이 쓴다. 서버랙 하나당 사용하는 전기량이 기존 센터의 10배 수준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2026년 데이터센터는 전 세계 전기 사용량의 2.1퍼센트를 잡아먹게 된다. 캐나다의 사용량을 넘어선다. 2030년이 되면 8.0퍼센트 수준까지 치솟는다. 유럽연합의 사용량과 맞먹는다. 마크 저커버그도, 일론 머스크도, 샘 올트먼도 전기가 모자라 AI의 발전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게다가 빅테크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는 좀 특별하다. 이들이 RE100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전부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다. 원자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모두 가입되어 있다.
  • 아마존은 RE100 회원이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간다. 204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기후 서약’의 제정을 이끌었고, 2025년까지 전력 100퍼센트를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구글의 탄소 배출은 지난 5년 동안 48퍼센트 증가했다. AI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으로 가능하다. 탄소배출권을 사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형 에너지 기업 옥시덴털(Occidental)로부터 6년간 탄소배출권 50만 톤을 구매하기로 했다.

AI 주권의 조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는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전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전기 요금이 올라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짭짤한 법인세 수익에 반색했던 조지아주는 지금 전력 확보 전쟁 중이다. 지난 3월, 아마존은 아예 탈렌 에너지(Talen Energy)라는 원자력 발전소 업체가 건설한 데이터센터를 인수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끼고 있는 센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최대 원자력 기업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전력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런 소식에 귀 기울이다 보면, 착시 현상이 나타난다. AI발 전력 대란의 해법이 원자력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빅테크들은 RE100을 포기한 적이 없다. 불안정한 재생 에너지 수급을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에 눈을 돌리지만, ‘올인’하는 것은 아니다. 원전을 새로 지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당장 2~3년 안에, 시장에 남을지 퇴출당할지가 결정되는 AI 판에서 원전은 보완재이거나 미래를 위한 ‘보험’이다. 샘 올트먼이 ‘핵융합’ 기술에 베팅한 것과 결을 같이한다. 당장 내년부터 핵융합 기술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

남 얘기가 아니다. AI 패러다임은 이제 시작이다. 2~3년 안에 우리도 AI 중심으로 IT 업계의 재편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어로 학습하고 추론하는 AI 개발이 진행 중이다. AI발 전력 대란은 우리에게도 예정된 미래다. 2029년까지 우리나라에 건설될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는 732개, 소요 전력 용량은 4만 9397MW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력 수요 역대 최대치가 9만 4509MW(2022년 12월 23일)였다. 도저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물론, 이 수요 중에는 선점 효과를 위해 일단 신청부터 해놓은 ‘허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56조 원이 넘는 전력망 설비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작 이 돈을 써야 할 한국전력은 누적 적자 40조 원에 짓눌려 있다.

전례 없는 전력 규모를 감당하려면 전례 없는 길을 가야 할 수도 있다.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판매권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라남도 해남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추진 중이다. 데이터센터 25곳을 모아 데이터센터 파크를 조성하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 조성한 태양광 발전 시설로 직접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함정이 있다. 재생 에너지의 특성상 날씨 문제 등으로 전력 수급이 불안할 땐 한전의 전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때 ‘직접 전력 거래계약(PPA)’ 요금제를 적용받게 되는데, 이게 통상 요금의 1.5배 수준이다. 재생 에너지 섹터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마존도 우리나라에서 클라우드 인프라를 조성하면서 부족한 재생 에너지를 메꾸기 위해 SK E&S와 태양광 PPA 계약을 체결하고 발전 시설을 짓고 있는 마당이다. 현재 PPA 요금제 도입은 산업계의 반발로 무기한 유예됐다.
국립극단이 선보인 연극, 〈전기 없는 마을〉하이라이트. 출처: 국립극단

사유


최근 국립극단이 선보인 연극, 〈전기 없는 마을〉은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전기를 끊는 AI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데이터센터로 전기가 부족해지니 어차피 소멸이 예정된 곳의 전기를 차단해 전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효율이다. 그렇게 전기가 끊긴 마을은 기어이 소멸하고 만다. 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오늘 한 지역의 불빛이 꺼진다. 논리적일지는 몰라도 부조리하다. 그래서 새로운 전력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인프라 건설에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AI 연산에 사용되는 칩셋의 정확도를 떨어트려서라도 전력 소모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신, 연산 과정을 간소화해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AI 모델에 관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기술은 때로 디스토피아로, 유토피아로 구불구불 방향을 전환한다. 다만, 목적지를 정할 권리는 인간에게 있다.
 
신아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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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This Week in AI’에서는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AI 뉴스 3가지를 엄선해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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