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서비스 종료

2024년 7월 12일, explained

PC통신 1세대 천리안이 문을 닫는다.

PC통신 천리안 서비스 신문 광고. 사진: 천리안
NOW THIS

PC통신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끝났다. 오는 10월, 명맥을 유지해 왔던 ‘천리안’의 서비스 종료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 등 전화 모뎀을 이용해 텍스트 기반 서비스를 제공했던 국내 1세대 PC통신은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한 챕터가 끝났다.

WHY NOW

기술은 사회를 바꾼다. 삶을 바꾼다. 기술의 발전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는 혁신의 한가운데에서는 그 변화의 방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생성형 AI 업계와 이를 지켜보는 우리처럼 말이다. 결국, 혁신의 징후를 제대로 알아차리려면 역사가 된 혁신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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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이 등장한 것은 1990년 12월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가정집에서 21세기적 의미의 ‘인터넷’과 조우하게 된 것은 ADSL 인터넷 전용망 보급이 시작된 1999년 이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PC통신의 시대였다. PC에 장착된 모뎀을 통해 PC통신 서비스망에 ‘전화를 거는’ 방식이다. 전화선을 사용하니 PC통신 이용 중에는 집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연결이 되는 순간에는 팩스 머신 연결음이 들렸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천리안은 ‘빠르고 비싼’ 서비스였다.

속도의 가격

돈이 더 많다고 TV 프로그램을 더 빨리 시청할 수는 없다. 더 좋은 통화 품질로 통화를 하고 싶어도 동네에 깔린 전화선은 다 똑같다. PC통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보 접근성이나 통신의 품질 등은 전 국민에게 거의 공평하게 제공되었다. 그런데 PC통신과 함께 우리는 정보 전달의 ‘속도’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도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월 정액제였던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와는 달리, 천리안은 쓴 만큼 돈을 내는 ‘종량제’였다. 밤새 채팅을 하거나 게시글을 잔뜩 올리면 값이 비쌌다. 하지만 천리안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빨랐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경험

초창기 PC통신은 뉴스, 날씨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 신문과 방송 이외의 창구로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하지만 사람들이 굳이 돈을 내고 PC통신에 빠져들었던 것은 뉴스 서비스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뉴스가 업데이트되는 것도 아니었고, 신문보다 별다른 장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동호회’에 빠져들었다. 게시판도 비슷한 기능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실시간으로 ‘채팅’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 내가 일하고 공부하는 공간을 뛰어넘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트위터나 페이스북 이전에, PC통신 동호회가 보여 줬다.

소수자의 발견

그러한 동호회 활동은 우리 사회에 일정 정도의 충격파를 남겼다. 역사적으로 목소리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천리안의 동성애자 동호회, ‘퀴어넷’을 들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온라인 동성애자 모임이라 할 수 있다. 1998년 당시 PC통신 성소수자 모임은 500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들리지 않던 목소리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 안에서 소수자는 쉽게 집단을 형성하고, 대화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혼자였던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해 ‘우리’를 만들었다. 청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PC통신이라는 공간 안에서 탄생했다. ‘학생복지회(학복회)’가 대표적이다. 우리 반 교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나와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진 또래가 PC통신 동호회에 모여있었다. 학복회는 1998년 교육부가 학생인권선언문을 만들 때 제정위원회의 패널로도 참여한 바 있다.

웹소설 비긴즈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관계 맺기와 소통 방식은 문화 콘텐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순수 문학 바깥의 영역을 평가 절하했던 문학계에 최초의 진동이 감지된 것 또한 PC통신에서였다. 대표적인 것이 하이텔 ‘섬머게시판’에 연재되었던 《퇴마록》, 하이텔 ‘Serial게시판’에 연재되었던 《드래곤 라자》다. 판타지, 공상 과학 등의 장르 문학이 신문이나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독자를 직접 만났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웹소설과 웹툰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스토리텔링 산업의 시작점이다.

온갖 잡것들의 시대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은 음악계였다. 20세기에는 음악 콘텐츠가 다수의 ‘대중’에게 가 닿는 방법이 ‘전파’뿐이었다. 라디오든 TV든 방송국의 입맛과 PD, 국장의 판단이 절대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권력의 틀을 깨는 일이 벌어진다. 1998년 10월, 신인 가수였던 조피디가 PC통신 나우누리 게시판에 자신의 1집 mp3 음원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제대로 먹혔다. 1999년 정식 발매된 조피디 1집은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았지만 50만 장 이상 팔렸다. 가리온, 주석, 버벌진트, 휘성 등은 PC통신 힙합 동호회에서 활동했고, 노브레인, 크라잉넛 등의 인디 록 밴드도 PC통신을 통해 입소문을 탔다.

IT MATTERS

PC통신에는 화려한 그래픽이나 마법 같은 AI가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모였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주파수를 만들어 냈다. 연대와 담론, 토론과 공유의 힘이었다. 텍스트에 기반한, UI나 UX라고는 없다시피 했던 그 조악한 시스템 안에서 참 많은 일이 벌어졌다. 월드 와이드 웹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과 생성형 AI의 시대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기술이 만들어 낸 공간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모여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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