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아마존

2024년 7월 9일, explained

온라인 서점이 AI 시대의 지배자가 된 이유

1994년 창업 당시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게시한 구인글. 사진: X.com
NOW THIS

지난 7월 6일은 아마존의 서른 살 생일이었다. 생일 선물은 푸짐했다. 며칠 전에는 시총 2조 달러를 돌파하며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94년 여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당시 제프 베이조스는 ‘유능하다는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일할 수 있는’ 개발자를 찾았다.

WHY NOW

지금이 AI의 시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 변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련 사업이나 직종에 몸담고 있거나 관련 주식이라도 갖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아마존은 한때 YES24였다. 그러나 지금은 AI 시대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운이 좋아서는 아니다. 빠르게 나아갔고 시대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롱테일의 마법

2000년대 중반,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서점가까지 휩쓸었던 경제 경영서 제목이 《롱테일 경제학》이었다. 소수의 히트 상품이 매출액의 80퍼센트를 만들어 낸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뒤집히면서 너도나도 롱테일 법칙을 공부하겠다고 뛰어든 것이다. 국내 언론은 이를 ‘틈새시장 공략’과 같은 말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롱테일 전략의 핵심은 기술이다. 소비자의 취향을 데이터에 근거해 보여 주고, 손쉬운 구매로 연결하는 과정에 기술이 필요하다. 꼬리를 잡아도 제대로 된 꼬리를 잡아야 하고, 꼬리를 잡는다 해도 매출로 쉽게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제대로 해낸 기업이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기술로 패러다임을 뒤집어 왔다.

흑역사

물론, 아마존의 역사 속에는 실패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4년 출시한 아마존의 스마트폰, ‘파이어폰’이다. 비싸고 안드로이드와 호환성이 떨어졌다. 2018년에는 AI 채용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가 폐기하는 소동이 있었다. 이력서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지원자를 채용 대상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영국 아마존 물류 노동자들이 ‘로봇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파업에 나섰다.

종이 없는 책

그러나 이 실패는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에 순기능을 하든, 역기능을 하든 아마존의 충격파가 남긴 부산물이다. 온라인 서점으로 등장해 ‘롱테일 법칙’으로 독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에 성공한 아마존을 두고 모두 놀라워했다. 그러나 아마존은 미국 최대의 서점 ‘반스 앤드 노블’을 쓰러트린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전자책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킨들’이라는 전자책 단말기 시리즈를 히트시켰다. 아이패드가 등장하자 아마존은 ‘킨들 파이어’라는 제품으로 맞붙었다. 파이어폰은 그 연장선에 있다. 킨들이나 킨들 파이어와는 달리 실패로 끝났을 뿐이다.

서점이 파는 컴퓨터

책을 깊게 파고들어 태블릿까지 성공했지만, ‘파는 행위’의 영역도 넓혔다. 아마존은 책을 잘 팔았다. 소비자의 취향 파악부터 물류와 배송까지 탁월했다. 이를 수많은 셀러에게 개방하자 세계 최고의 이커머스 플랫폼이 탄생했다. 매력적인 플랫폼이 되기 위해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2017년에는 ‘홀 푸드 마켓’을 인수했다. 고급형 신선식품 마트다. 물류와 배송에 로봇과 드론을 공격적으로 배치했다. 로봇과 일하는 노동자들의 부상이 늘어나고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창고와 직원을 파는 마트

‘파는 도구’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2006년, 아마존은 새로운 사업 분야에 뛰어든다. 바로 클라우딩 컴퓨팅 분야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서버든 컴퓨터든 필요한 만큼 구입해서 보유했다. 그러다가 손님이 몰리는 시점이 되면 ‘서버가 터지거나’ 갑자기 큰 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일이 생겼을 때 고성능 컴퓨터를 추가로 구입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제는 서버도 컴퓨팅 성능도 아마존 웹 서비스(AWS)에서 빌려 쓰고 쓴 만큼 돈을 내면 된다. 아마존과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에 희소식이었다. 연말연시 세일 철을 대비해 평소 쓰지도 않는 용량의 서버를 준비해 둘 필요가 없어졌다. 스타트업에는 기회였다. 큰 자본 없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생성형 AI 붐이 가능해졌다.

생성형 AI판 배달의 민족

생성형 AI를 개발하고 학습시키는 데에는 막대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 특히 거대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의 경우 천문학적인 규모의 말뭉치를 학습시킬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이걸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다. 1위는 아마존의 AWS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뒤를 잇는다. AI 시대에 아마존이 잘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역전을 노렸다. 오픈AI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에 챗GPT를 얹은 것이다. 아마존도 곧 따라잡았다. 앤트로픽을 비롯한 생성형 AI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클로드(Claude), 라마(LLAMA) 등의 생성형 AI를 여러 개 얹었다. AI 플랫폼이 된 것이다. 다음 세대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경쟁이 시작됐다. 아마존의 출발선은 앞서있다.

NEXT NVIDIA

아마존도, 마이크로소프트도, 구글도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엔비디아의 AI 칩이다. 주문은 밀려 있고 부르는 게 값이다. AI 시대, 개미들이 가장 사랑하는 종목으로 엔비디아가 떠오른 이유다. 이 역학 구조에 많은 기업이 도전하고 있다. 학습 영역은 엔비디아가 너무 공고하다. 추론 영역에 틈새가 있다. 아마존도 이 틈을 노린다. 특히 인페런시아(Inferentia)의 경우 비용 대비 효율을 이미 인정받고 있다.

IT MATTERS

사실, 아마존은 이미 2013년부터 AWS를 위한 자체 칩을 생산해 사용해 온 공력이 있다. 2015년에는 이스라엘의 반도체 스타트업 ‘안나푸르나 랩(Annapurna labs)’을 인수한다. AI 시대, 그 경험과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체 칩이 아마존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라는 시각도 있다. 개발과 생산에 들인 돈에 비하면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평범한 계산으로 움직이는 기업이 아니다.

평범한 서점을 열기 위해 ‘유능하다는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일할 수 있는’ 직원을 찾을 필요는 없다. 아마존의 시작은 평범하지도 않았으며 서점도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라 다음을,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팔았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동네 서점이 문을 닫았고 추억이 어린 백화점도 폐점했다. 설익은 AI 기술에 차별이 생겨났고 비싼 쓰레기도 여럿 개발 및 판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마존은 승자다. 비범함이라는 가치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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