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일 정서의 실체

2024년 7월 3일, explained

중국의 반일 감정은 우리의 정치와 멀지 않다.

2012년 9월, 중국 시위대가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밖에서 반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Feng Li/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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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터넷 회사들이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를 보호하던 중국 여성이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온라인상의 극단적인 민족주의, 특히 반일 감정을 단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위챗을 소유한 텐센트의 공지에 따르면 해당 사건이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며 “일부 네티즌이 중국과 일본 간의 대립을 조장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촉발했다”고 밝혔다.

WHY NOW

현대 정치 지형에 있어 국민 정서란 무엇일까? 콘텐츠를 퍼트리는 소셜 미디어는 국민의 정서가 쉽게 구성되고, 또 과대표 되도록 만들었다. 여과 장치를 거치지 않은 취약한 민심은 정치와 사법의 영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누군가는 민심을, 또 누군가는 민심을 불신하는 것 자체를 정치의 이유로 삼는다. 중국의 반일 감정이 우리의 정치와 멀지 않은 이유다.

스쿨버스 안내원

중국 동부 장쑤성에서 한 여성 스쿨버스 안내원이 사망했다. 괴한의 흉기 공격으로부터 한 모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중국 매체는 해당 여성 후유핑 씨의 용감한 행동을 보도했고, 중국은 추모의 물결에 휩싸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후유핑 씨가 보호하려 했던 모자가 일본인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숨진 안내원이 일본의 간첩이라는 루머가 도는가 하면, 일본은 침몰해야 하고, 민족은 말살돼야 한다는 극단적인 코멘트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졌다.

소셜 미디어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움직인 건 온라인 게임과 소셜 미디어 등을 운영하는 중국의 기업 ‘넷이즈’였다. 지난달 29일 밤, 성명을 통해 일부 이용자가 “국수주의적 정서를 선동하고자 부적절한 코멘트를 게시하며 사실을 과장하거나 조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중국의 최대 IT 기업 ‘텐센트’ 역시 반일 정서와 극단적 국수주의를 부추기는 800여 개의 게시물을 삭제하고 61개의 계정을 정지시켰다고 밝혔다. 일부 사용자는 반일 콘텐츠를 단속하려는 인터넷 회사들의 계획에 불만을 표하며 해당 플랫폼들을 “중국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기모노

중국의 반일 감정이 본격화한 것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였다. 당시 온라인상에서는 “일본 제품을 전면 불매해야 한다”는 댓글이 2만 6000여 명의 공감을 받았다. 온라인의 정서는 오프라인으로 쉽게 번졌다. 2022년 8월,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인 한 여성이 코스프레용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발생한다. 경찰은 여성에게 “중국인으로서 기모노를 입을 수 있냐”며 소리쳤다. 여성은 공공질서를 교란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연행돼 심문당했다. 일본이 공공연한 적이 되면서 반사 이익을 얻은 건 중국 정부였다. 계명대학교 이지용 교수는 중국이 “가장 고전적인 방법인 외부의 적을 설정해 시야를 밖으로 돌린 것”이라 지적했다.

치안관리처벌법

중국 정부는 반일 감정을 철저히 이용했다. 거리의 기모노 사건으로 인해 이른바 ‘기모노 처벌법’이라 불리는 치안관리처벌법 개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중화민족의 정신을 훼손하고 감정을 훼손하는 복식을 착용한 경우에 대해 5~10일의 구류나 1000~3000위안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다. 개정안에는 복장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중화민족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 국민의 감정을 거스르는 복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언급조차 없었다. 중국의 법률 전문가들은 해당 조항이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며 폐기를 요청했다. 지난 6월 26일, 법안을 둘러싼 반발로 인해 치안관리처벌법에 게재된 논란의 문구는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됐다.

온라인 여론

치안관리처벌법 개정은 사실상 기모노 사건과 온라인상의 반발을 동력 삼아 진행된 논의였다. 문제는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온라인 여론이 지나치게 취약하고, 또 과대표 된다는 점이다. 최근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X에서 뉴스를 적극적으로 퍼트리는 슈퍼 전파자(super sharers)가 소셜 미디어에 압도적인 양의 가짜 뉴스를 퍼트린 것으로 드러났다. 소수가 형성한 민심이 실제 민심과는 다를 수 있다는 근거다. 책 《카오스 머신》의 저자이자 뉴욕타임스 기자인 막스 피셔는 소셜 미디어가 증오와 폭력을 전달하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으며 세상을 극단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짜 문제

소셜 미디어를 타고 퍼져나오는 반일 감정과 치안관리처벌법을 두루 살폈을 때, 문제는 국민의 정서가 극단화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국민의 정서라는 것이 취약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취약한 가짜 민심이 정치적, 사법적 절차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명명된 국민 정서는 더욱 확산한다. 그러나 언론과 시민은 모두 문제의 표면만을 바라본다. 중국의 인권 문제와 심화하는 국가 간 분쟁 정도로 말이다. 진짜 문제는 여론과 그를 이용하는 정치적 과정,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결과에 있다.

괴벨스의 원칙

역사에서 유사한 문제는 반복됐다. 히틀러를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시킨 괴벨스는 선동에 있어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선전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예술”이라고 언급하며 불쾌한 뉴스를 정치에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했다. “국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이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 태도로 삼아야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중국 정부에게 있어 반일 감정과 일련의 사건들은 불쾌한 뉴스이자 위기인 동시에 정치 예술을 가능케하는 도구였다.

IT MATTERS

괴벨스의 원칙, 그리고 여론의 정치화는 역사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반복되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MAGA 프로젝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거리를 장악했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민심을 이유로, 혹은 민심을 받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에 대한 비방을 이어간다.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심과 여론의 형성 과정을 튼튼하게 재건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민심과 여론이 곧바로 정치의 과정으로 대체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국민의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화하고, 그를 설득력 있는 논리로 대체해야 한다. ‘일본은 적’이라든지, ‘국민의 정서’라는 단순한 명제가 정치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국민 정서가 절대적으로 옳지 않은 역사를 수없이 경험해 왔다. 중국의 반일 감정에서 찾아낼 교훈이 달라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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