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에 불이 나면

2024년 6월 27일, explained

배터리의 시대다. 그런데 불이 나면 끌 방법이 없다.

2023년 10월 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테슬라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Muhammed Gencebay Gur,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NOW THIS

경기도 화성의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0여 명이 숨졌다. 사망자 상당수가 외국인 근로자였다. 화재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공장 2층에서 발생했다. 배터리 한 개가 폭발하면서 옆에 있던 배터리 3만 5000개로 불이 옮겨붙었다. 소방 당국은 현장에 인력 159명, 펌프차 등 장비 63대를 투입해 화재 발생 22시간 만인 25일 오전 8시 48분에 진화 작업을 마쳤다.

WHY NOW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배터리 천지가 됐다. 그런데 배터리 시설의 안전 기준과 소화 역량은 유선 시대에 머물러 있다. 배터리에 불이 나면 물로 끄기 어렵다. 유독 가스를 내뿜어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 진입하기도 어렵다. 열 폭주 현상으로 불길을 잡아도 2차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번에는 배터리 공장이었지만 다음은 도로와 주택과 주차장이 될 수 있다.

화재

화재 당시 상황이 담긴 CCTV가 공개됐다. 배터리를 포장하는 작업장에서 직원 한 명이 바닥에 쌓여 있는 배터리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배터리 하나가 폭발하면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직원들이 달려와 배터리들을 옮기는데, 다른 배터리들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소화기를 뿌려도 소용이 없다. 1차 폭발 42초 만에 CCTV 화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 차고 불길이 치솟는다.

연결

소방대원은 1차 폭발 11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폭발이 이어져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발화부터 진화까지 22시간이 걸렸다.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끔찍한 사고의 원인은 배터리였다. 우리가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핸드폰, 노트북, 태블릿, 전기차까지. 사람과 사물과 공간이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배터리가 기본인 세상이 됐다.

구조

리튬 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된다. 전기를 운반하는 입자인 전자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며 화학적 반응을 통해 전기를 만든다. 전자의 이동을 돕기 위해 액체 상태인 전해질을 넣고,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지 않고 전자만 오갈 수 있는 분리막을 세운다.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과열되면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

폭주

리튬 배터리는 과충전이나 기온 상승으로 온도가 높아지면 부피가 팽창한다. 이렇게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면 분리막이 붕괴해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만나게 된다. 화학 반응을 하면 순식간에 1000도 넘게 온도가 치솟는다. 이 현상을 ‘열 폭주(thermal runaway)’라고 한다. 배터리 내부의 수많은 셀(cell) 중 하나에서 발생한 열 폭주는 인접 셀의 열 폭주를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가스

배터리 화재는 겉보기에 불길이 사라져도 내부에서는 고열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언제든 불이 다시 붙을 수 있다. 게다가 리튬 배터리는 불이 붙으면 불산 가스를 내뿜는다. 불산 가스는 수소와 불소가 결합한 기체인데, 불산 가스를 마시면 호흡기와 폐 조직이 손상된다. 이런 유독 가스 때문에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 내부로 진입하기가 어렵다.

진압

배터리에 불이 나면 물로 끄기 어렵다. 열 폭주 현상이 일어나는 배터리의 불을 끄려면 물이 가득 찬 수조에 담가 냉각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불이 난 공장을 수조에 담글 수는 없다. 결국 엄청난 양의 물을 뿌려 불을 꺼야 한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테슬라 한 대에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데 물이 13만 리터가 들어갔다. 내연 기관 차량 화재보다 72배 많았다. 소방차 한 대가 싣고 다니는 물은 3000리터다.

사고

종합하자면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배터리 천지가 됐다. 그런데 배터리는 한번 불이 붙으면 현재의 소방 장비로 진압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은 아파트 위주의 주거 문화다.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한 대에 불이 나면 아파트 전체로 불이 옮겨붙는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2021년 호주에 설치된 테슬라의 대용량 배터리 시설에 불이 났을 때는 완전 진화까지 나흘이 걸렸다.

IT MATTERS

배터리 사용은 급증하는데, 배터리 시설의 안전 기준과 소화 역량은 유선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번은 배터리 공장이었지만 다음은 도로와 주택과 주차장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전기차 화재가 총 72건 발생했다. 2020년부터 매년 2배씩 늘고 있다. 전기차 화재에는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덮개, 차량을 수조에 담그는 이동식 수조, 차량 하부 배터리에 직접 물을 뿌리는 관창 등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전기차는 6만 5000대였다. 그런데 서울시가 보유한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는 61대였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