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국가비상사태

2024년 6월 21일, explained

저출생 대책이 늘 오답인 이유가 있다.

2024년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 주재에 앞서 HD현대 직장어린이집을 찾았다. 사진 :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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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해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고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맡게 된다. 육아휴직 급여를 인상하고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도 20일로 확대한다. 아이 낳는 가구를 대상으로 연간 12만 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고 윤 대통령 임기 내에 3~4세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해 돌봄 공백도 메꾼다.

WHY NOW

선언은 강력하고 대책은 구체적이다. 그런데 여전히 전문가들의 평가는 ‘낙제점’이다. 기존의 정책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국가비상사태에 걸맞은 혁신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많은 돈을 들여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실패했다. 정책의 강도가 부족했던 것이라기보다는 핵심을 짚지 못한 것 아니었는지 의심해 볼 때다. 지금이 비상사태라면 비상한 방안이 필요하다.

떠드는 사람들

얼마 전까지 덕수궁 돌담길 앞에서는 출산 장려를 위한 ‘국민댄조’ 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렸다. 댄스와 체조를 조합한 운동이라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괄약근을 조이는 케겔 운동을 도입한 동작을 하며 ‘쪼이고!’를 외쳐 눈길을 끌었다. 김용호 서울시의원이 내놓은 저출생 대책이다. 자궁을 건강하게 해 “여성들이 아기 낳을 때 장점이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보고서에는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켜 향후 (결혼)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한 선임 연구위원의 제언이 실렸다. 이 보고서에는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늘리기 위해 노인들을 외국으로 보내자는 주장도 함께 실렸다.

저출생 대책의 흑역사

언뜻 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이런 정책들은 최근 들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2010년대 내내 황당한 대책과 주장들이 쏟아졌다. 2013년에는 ‘싱글세’라는 것이 사회적인 논의의 대상이었다. 정부가 가임기 여성의 지역별 분포를 표기한 지도를 만들어 공개한 일도 있었다. 여성들이 ‘스펙’을 높이느라 ‘결혼 시장’에 늦게 들어오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며, 휴학과 연수를 다녀오면 취업 시 불이익을 주고 고학력 여성들의 ‘하향 결혼’을 유도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버젓이 발표되기도 했다.

당신이 수단인 세계

왜 우리는 10년이 넘게 오답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아주 오래전에 쓰인 책 한 권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정초》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하라.” 사실, 사람은 언제나 수단이었다. 우리는 생산 수단이다. 때로는 정치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출생 정책에서는 출산율 상승의 수단이 된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우리는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 즉, 저출생 정책에 있어 우리는 수단임과 동시에 목적이다. 저출생에 관한 연구자들의 시선이, 정부의 정책이 이 점을 간과할 때 오답이 발생한다.

생존의 욕구, 재생산의 욕구

그렇다면 사람의 삶을 목적으로 두는 정책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그 힌트 또한 아주 오래된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낡은 이론과 사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맬서스는 적어도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에 관해 탐구했다. 바로 ‘생존’과 ‘재생산’ 욕구다. 맬서스는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재생산의 욕구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점을 주목했다. 우리의 상황을, 우리의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출근길

우리나라의 2023년 합계 출생률은 0.72였다. 쉽게 말해 도시 국가 수준이다. 홍콩 0.77(2021년 기준), 대만 0.87(2022년 기준), 싱가포르 0.97(2023년 기준) 정도가 우리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다. 한국은 도시 국가가 아니지만, 수치는 다르게 말한다. 실제로 2013년부터 10년간 비수도권 지역을 떠난 20대 청년은 60만 명에 육박한다. 지금, 수도권에서 삶을 쌓아가고 있는 청년이 느끼는 인구 밀도는 얼마나 될까. 경쟁의 밀도는 어느 정도일까. 오전 8시 20분, 당산역에서 지하철에 짐짝처럼 실려 출근하는 청년은 미래를, 생존을 자신할 수 있을까.

도시 국가, 서울

청년에게는 한국이 서울이라는 도시 국가처럼 작동한다. 그 원인은 기회의 불균형에 있다. 특히 여성 청년에게 지역은 서울에 비해 가부장적 문화가 더 강하며, IT나 콘텐츠, 미디어 등 4차 산업에 해당하는 일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장소다. 서울이 기회를 독식하는 사회 구조는 저출생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원인을 품고 있으며 수많은 오답이 제시된 문제다. 그리고 두 문제는 서로 단단히 얽혀 있다. 사실, 정부도 알고 있다. 감사원은 이미 지난 2021년 보고서를 통해 “출산율 급감과 수도권으로의 지나친 인구 집중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엄마만 5시에 퇴근하면

결국 경쟁에 쫓기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서울이 아니어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존재하는 나라를 만들지 않고서는 저출생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아이를 둔 엄마를 일찍 퇴근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펴면 엄마의 동료가 일을 떠맡게 되는 구조다. 20만 원의 수당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불편감이 발생한다. 이래서는 어떤 정책도 그저 아이 낳은 부모를 거들어주는 ‘복지’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누구든 급한 용무가 있다면 마음 편히 회사에서 조퇴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회가 해결책이다. 물론, 멀고 이루기 힘든 과제다. 다만,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IT MATTERS

행복한 사회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난 2024년 4월 말, 조세연에서 흥미로운 보고서가 나왔다. 세대별 인구수에 반비례해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얘기다. 쉽게 말해 인구수가 적은 청년층에 투표권을 더 쥐여줘야 세대별로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50대에게는 1인당 3표, 20대에게는 1인당 4표를 행사하게 하면 비율이 맞는다.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조세연의 창립 멤버인 홍범교 전 연구위원이 퇴직과 함께 내놓은 우리 사회에의 대안이다.

1960년대와 2024년의 행복한 삶은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2050년의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2024년의 내 삶이 윤택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평가 절하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를 조정하는 역할은 사실 정부의 몫이다. 정치의 힘으로 설득하고 정책의 힘으로 실현한다. 홍 전 연구위원의 비상한 제안은, 그게 잘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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