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한국인

2024년 6월 14일, explained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갇혀버리는 삶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963년의 마포 주공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NOW THIS

인천의 한 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갇혔다. 15층짜리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기 때문이다. 고층에 거주하는 고령의 주민들은 외출을 아예 포기했다. 병원 예약 등의 사정이 있을 땐 계단참에 몇 번이고 주저앉았다가 몸을 일으키는 식으로 출입한다. 택배나 배달도 당연히 멈췄다. 주민들이 직접 계단으로 나른다. 3년 전, 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정부의 정밀 안전 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조건부로 연장 운영을 해왔지만, 제때 수리를 진행하지 못해 운행이 중단됐다.

WHY NOW

이렇게 안전 검사에서 불합격을 받아 운행이 중단된 엘리베이터는 전국적으로 400대가 넘는다. 지난 2017년, 7대 안전장치 설치가 의무화된 이후 그 이전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경우 안전 검사에서 불합격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건물은 높다. 고층 건물에 거주하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엘리베이터는 편의 시설이 아니라 필수 시설이다. 우리의 삶은 왜 엘리베이터라는 기계에 이렇게나 의지하게 되었을까.
20세기의 발명

전 세계의 많은 대도시가 마천루를 건설하고, 또 자랑한다. 50층, 100층을 넘기는 고층 건물은 경제 자본으로, 상징 자본으로 기능하며 도시의 능력을 증명하는 존재다. 빌딩의 시대를 시작한 인물은 미국의 기술자, 엘리샤 오티스다. 1854년, 뉴욕 만국산업박람회에서 오티스는 고정 밧줄이 끊어져도 추락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선보였다. 대중은 탄성을 내질렀다. 최첨단이었다. 일상의 모습을 단번에 바꿀 기술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고층 빌딩의 시대가 열렸다.

아파트는 오른다

우리나라에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고층 건물이 하나둘 올라가기 시작했다. 1985년 완공된 여의도의 ‘63빌딩’을 포함해, 큰 기업의 사옥들이 높이 솟아 올랐다. 그런데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대도시에 해외 대도시와는 구별되는 고층 건물군이 생겨난다. 바로 ‘아파트 단지’다. 물론, 해외에도 대규모 아파트 건물은 존재한다. 그러나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불편한 ‘공동 주택’으로 인식되곤 한다. 서울처럼 대규모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많은 대도시도, 그 단지에 살기 위해서는 높은 소득 수준이 필요한 나라도 무척 드물다. 한국의, 특히 서울의 ‘아파트 신화’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마포에서였다.

세련된 도시 사람의 집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330번지. 지금의 마포 삼성 아파트 자리다. 1964년 11월, 이곳에 한국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5.16 쿠데타를 일으켰던 군부가 제시하는 ‘생활 혁명’의 본보기가 되는 주거 시설, ‘마포 주공 아파트 단지’다. 김장독을 묻을 공간은 없고, 3대가 모여 살기에는 비좁았다. 통조림 음식을 사먹고, 자녀를 한둘 둔 핵가족을 위한 미래의 생활 터전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식수도 부족했던 시절, 수세식 화장실에 중앙난방을 갖췄으며, 6층 높이에 10개 동 642세대였다.

재건축의 시작

마포 주공 아파트 단지는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별세상이었다. 하지만, 건설을 추진했던 군부 입장에서는 청사진을 어느 정도 양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군부는 원래 아파트를 10층 높이로 짓고자 했지만, 이를 감당할 기술이 국내에 없었을뿐더러 당시 미국경제협조처(USOM)가 고층 아파트의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USOM은 아파트보다 난민 구호 주택을 더 많이 지을 것을 주장했다. 세련된 도시의 가족을 위해 건설된 마포 주공 아파트는, 그러나 그 수명이 다해서야 진짜 가치를 드러낸다. 1988년, 최초의 아파트 단지에서 최초의 ‘재개발 아파트 단지’로 거듭나면서다.

안전 진단 통과를 환영합니다

6층짜리 건물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16, 17층짜리 아파트를 세워 올렸다. 이문이 많이 남았다. 용적률이 낮은 저층 아파트를 사서 재건축에 성공하면 큰돈을 벌게 되는, ‘용적률의 마법’이 시작된 것이다. 마포 주공의 용적률은 87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를 재건축한 마포 삼성 아파트의 용적률은 277퍼센트다. 이때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단지는 경제 원칙을 넘어선 존재가 된다. 건물이 낡고 오래될수록 가격이 치솟는다. 즉, 감가상각이 적용되지 않는다. 건물을 새로 짓는데, 돈을 쓰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벌게 된다. 서울시 등 지자체가 용적률 상한을 적극적으로 풀어 줬기 때문이다.

높이, 더 높이

그렇게 고층 아파트 단지는 재산 증식의 상징이 되었으며, 도시에 안정적으로 안착한 사람들의 폐쇄적인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현관 앞까지 가기도 버거운 높이인데 오히려 각광 받는다. 앞으로도 서울의 하늘을 아파트가 채워나가게 될 전망이다. 서울시가 다음 달 그 얼개를 공개할 예정인 ‘서울시 경관 계획’에 남산 주변이나 강남, 압구정 등의 고도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 이제 남산 능선을 온전히 보기는 힘들어지겠지만, 몇몇 지구의 재개발 추진에는 탄력이 붙는다.

집값이 오르는 까닭

이런 규제 완화 정책에는 우려의 시선도 따라 붙는다. 아파트 공사비는 코로나19 이전까지 평당 500만 원 수준이었다. 팬데믹이 끝나고 전쟁이 시작되고, 금리가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건축비는 700만 원 선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재건축해서 돈 벌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높아진 공사비가 일반 분양가로 전가된다. 서울 아파트 불패 신화에 근거해 그 비싼 일반 분양이 팔린다. 집값이 치솟는다. 시장 교란이다.

IT MATTERS

이런 상황이 지속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안 그래도 서울의 인구는 줄고 있다. 원인은 높은 집값이다. 서울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경기와 인천 등으로 사람들이 밀려난다. 재건축으로 과도하게 집값이 올라갈수록 서울은 사람을 품을 수 없는 도시가 된다. 그러는 동안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던 빌라 등 다세대 주택은 전세 사기 여파로 기피 대상이 되었다.

돈과 사람, 각종 인프라 등을 빨아들여 지방 소멸까지 치달았지만, 정작 서울은 사람을 품지는 못하는 도시가 되었다. 내 돈으로 지어 올린 아파트 단지에서 담장을 치고 외부인을 쫓아내며 살아가는 폐쇄적인 문화의 도시다. 이제 곧 한강과 남산의 풍경도 일부의 주민에게만 허락될지 모른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갇힐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성. 한국의 재건축 문화가 만든 고층 아파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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