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드림 시나리오

2024년 6월 5일, explained

영화 〈드림 시나리오〉 속 폴은 알고리즘에 갇힌 우리와 닮았다.

영화 〈드림 시나리오〉 포스터. 사진 : A24
NOW THIS

화제의 제작사 A24에서 낸 영화가 개봉했다.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드림 시나리오〉다. 폴 매튜스 역할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모든 사람의 꿈에 등장하는 남자가 된다. 꿈속의 남자 폴은 일순간 ‘인플루언서’가 된다. 폴이 가진 욕망과 사람들의 꿈은 머지않아 악몽으로 진화한다. 폴은 순식간에 인기 인플루언서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밈으로 전락한다.

WHY NOW

허황된 이야기지만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다. 〈드림 시나리오〉를 연출한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전작은 소셜 미디어의 그늘을 다룬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였다. 〈해시태그 시그네〉가 소셜 미디어를 통한 과시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드림 시나리오〉의 폴 역시 꿈이라는 불투명한 알고리즘의 한복판으로 쏟아진다. 그 누구도 꿈을 제어할 수 없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노동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불투명함에서 기인하는 불안. 그런 점에서 〈드림 시나리오〉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폴 매튜스

폴은 지극히 평범한 남자다. 친구들의 표현에 의하면 “그리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작은 대학에서 진화생물학을 가르치고, 때로는 얼룩말의 무늬가 진화에 유리한 이유를 설명하며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기회는 다름 아닌 타인의 꿈이었다. 모든 사람의 꿈에 자신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SNS 메시지가 쏟아진 것이다. 평범한 폴에게 방송 인터뷰 제안이 오기도 한다. 시시한 대학교수가 아닌 유명 학자로 거듭나고 싶은 폴에게 ‘꿈속의 남자’라는 정체성이 가져다준 영향력은 본인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었다. 폴은 자신의 책을 내줄 매체와 기업을 찾는다. 한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이 폴을 미팅 자리에 초대한다.

소츠

‘소츠(thoughts?)’라는 이름의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은 진화생물학 책을 내고 싶다는 폴에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스프라이트 광고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꿈에서도 스프라이트를 들고 있는 폴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며,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되리라는 심산이다. 소츠에게 중요한 것은 폴도, 폴이 내고 싶은 책도 아닌 꿈속의 남자라는 폴의 새로운 정체성뿐이다. 물론 주목해야 할 것은 폴을 새롭게 정의한 꿈속의 남자라는 정체성은 폴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는 점이다. 폴의 영향력은 폴의 손아귀 바깥에 있다. 폴이 오른 스타덤은 마치 알고리즘에 우연히 간택 당한 유튜브 영상처럼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른 채 만들어진 것이었다. 쉽게 말해 설명 불가능하다.

블랙박스

꿈에 폴이 등장하는 알고리즘이 그동안 그래왔던 대로 작동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와 달랐다. 방관만 하던 꿈속의 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악몽을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현실의 사람들은 폴을 피하기 시작했다. 폴은 현실에서 꿈의 알고리즘을 고치려 시도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폴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알고리즘은 그런 폴이 등장하는 꿈을 닮았다. 알고리즘은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데이터를 서열화해 행위를 자동화하는데, 데이터가 쌓일수록 알고리즘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를 되짚기 어려워진다. 북저널리즘 시리즈 《알고리즘의 블랙박스》는 “방대한 양의 정보 처리가 불가능한 인간과 그것이 가능한 기계의 통역 불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블랙박스를 열 수도, 알고리즘이 어떻게 결론을 도출해 내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알고리즘 노동

우리는 비슷한 일을 꿈이나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경험하고 있다. 노동과 소비의 장이 돼버린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에서 말이다. 북저널리즘에서 6월 중 출간 예정인 책 《알고리즘 자본주의》의 저자 신현우는 각종 인플루언서와 편집, 1인 방송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그들이 일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알고리즘에 간택 받기 위한 부수 작업’이었다. “알고리즘에 노출되기 위해 내용보다 섬네일이나 키워드 연관성에 방점을 두고” 영상 콘텐츠들이 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상을 기획하는 것보다 눈에 띄는 섬네일을, 검색에 걸릴 수 있는 해시태그를 짓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런 부수적 노동이 없다면 알고리즘의 그물망 안에 그들의 작업 결과물은 걸려들지 않는다. 물론 이 작업 과정이 투명하다면 사람들은 문제를 확인하거나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블랙박스에 갇혀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갈아 넣어야 한다.

정체성

이는 노동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악몽 속의 남자로 자신을 새로이 정체화해야 했던 폴과 마찬가지로 알고리즘 위에서 노동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리즘에 맞춰야 한다. 《알고리즘 자본주의》에 인용된 한 인플루언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들의 노동은 삶 정체성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의 연애, 나의 일상, 모든 게 알고리즘으로 평가받게 되죠.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365일 행복해요. 이런 걸 다 숨겨가면서 하니까 병이 와요. 정신이 온전한 사람 거의 못 본 거 같아요.” 최근에는 이런 가상의 정체성, 알고리즘만을 위해 만들어진 정체성을 내세우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도 등장했다. 실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알고리즘과 대중의 선호에 맞춰 제조된 정체성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실제 인간들을 버추얼 인플루언서처럼 마주하고 평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플랫폼 기업

이 불투명한 노동과 조작된 정체성에서 수혜를 받는 자들도 존재한다. 바로 플랫폼이다. 〈드림 시나리오〉에서는 꿈에 등장하던 폴의 사례를 이용해 한 스타트업이 꿈 사업을 펼쳐 나간다. 소츠가 제안한 시나리오와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꿈 사업을 하는 스타터업은 드림플루언서(Dreamfluencer)를 통해 타인의 꿈에 고객사의 제품을 심어 두려 한다. 실제로 움직이는 자들은 꿈속에 침입하는 드림플루언서, 그리고 꿈을 꾸는 익명의 사람뿐인데, 그 사이의 부수 이익은 플랫폼을 제공한 스타트업에 돌아간다. 어딘가 익숙한 구조다. 커뮤니케이션과 연결을 알고리즘으로 장악한 현재의 기술 기업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만나는 플랫폼을 건설해 두고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수취한다. 《알고리즘 자본주의》는 이를 ‘지대(rent)’에 비유했다.

인플루언서만의 이야기가 아닌

영화는 폴을 뒤따라 간다. 그러나 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영문도 모른 채 폴을 싫어하게 된 세상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알고리즘을 닮은 영문 모를 꿈으로 인해 한 사람을 증오하고 취소(cancle)하기 시작했다. 인플루언서가 아닌 우리 대다수의 정체성도 일정 부분 알고리즘에 의해 포획되고 조작된다. 매일 플랫폼에는 나를 위한 동영상과 콘텐츠가 추천된다. 언론사 웹사이트의 측면에는 내가 한 번 클릭한 곳의 광고가 쉴새 없이 뜬다. 알고리즘은 인플루언서의 정체성만 한정 짓는 것이 아니다. 실시간 트렌드와 해시태그,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통해 이미 우리는 ‘제조된 청중’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드림 시나리오의 일부다.

IT MATTERS

알고리즘이 블랙박스 안에 연산과 결정의 과정을 가뒀다면, 인공지능은 그 결과물조차 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리고 지식이라고 주어진 텍스트와 콘텐츠를 매 순간 의심한다. 내가 꾼 악몽이 진짜 꿈인지조차 구분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온다는 뜻이다. 《알고리즘 자본주의》는 이런 인공지능 시대에 앞서 알고리즘 시대에서 놓쳐 왔던 것이 무엇인지를 재고하도록 한다. 그림자 밑에 가려진 노동, 조용히 조작됐던 정체성, 플랫폼이 수취했던 지대 등에 주목하면서 말이다.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은 사용자가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결과와 출력을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를 뜻한다. 인공지능이 결정한 각 단계를 좇으며 왜 이런 결과가 도출됐는지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 빠른 꿈의 속도에 영화 속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맞춰 나갔던 것과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이 주목받고 있다. 블랙박스를 조금이라도 연다면, 우리의 드림 시나리오는 조금 덜 불안하고, 또 조금 더 따듯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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