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축제의 의미

2024년 6월 4일, explained

2024년에도 서울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2024년 6월 1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시위대가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 Chung Sung-Jun/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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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자긍심의 달(LGBT Pride Month)을 맞아 지난 토요일(1일) 서울 도심에서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서울광장은 막혔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사용 불허 결정 때문이다. 대신 을지로 거리가 축제의 물결로 가득 찼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올해 축제에 15만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WHY NOW

누군가에게는 허가할 수 없는 행사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신나는 잔치였다. 이것은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퀴어문화축제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에 동의하느냐의 문제다. 이 축제의 본질은 혐오와 낙인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자리이자 차별에 맞서겠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무엇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을 알아야 이 축제에 동의할지, 반대할지 결론 내릴 수 있다.

축제가 저항인 이유

지난 2018년 9월, 인천에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제대로 열리지는 못했다. 축제가 예정된 광장에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축제 전날부터 여러 대의 차량을 세워 점유했고, 행사 당일 새벽에는 무대 설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반대 집회 참가자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나 천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축제장에 난입해 바닥에 드러누웠고, 광장을 둘러싸 축제 참가자들을 고립시켰다. 오후가 되자 물품과 부스, 축제 차량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반대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도 속속 SNS를 통해 공유됐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 그 현장의 기록이 남아있다.

하이힐을 던졌던 날

우리가 6월에 성소수자에 관해 생각하게 된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69년 6월, 성소수자들이 드나들던 뉴욕의 술집, ‘스톤월 인(Stronewall Inn)’에서 이들을 단속하러 나왔던 경찰을 향해 동성애자, 홈리스, 청소년, 트랜스젠더, 드랙퀸이 신발을 던졌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그렇게 저항이 된다. 자긍심과 연대의 선언이 된다.

우리의 축제를 후원해 줘서 항의합니다

그 연대의 대열에는 의외의 기관도 끼어있다. 이를테면 주한 미국 대사관 같은 곳이다. 주한 EU 대표부를 포함해 2024년 서울퀴어문화축제 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대사관 및 해외 기관은 16곳이었다. 성소수자에게 열려있으며, 인권 증진을 위해 애쓰는 국가라는 홍보 전략의 일환이다. 그런데 올해 축제에서는 이 후원국 부스를 둘러싸고 시위가 벌어졌다. 주한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 등이 타깃이었다.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항의였다. 전쟁을 방조하고 돕고 있는 국가들을 향해 ‘공범’이라고 외쳤다.

그 오지랖의 이름은 연대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에 머나먼 중동의 전쟁이 소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존재에 자긍심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차별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정체성의 덩어리다. 여성이면서 장애인이고, 노인이면서 성소수자다. 학교의 차별, 광장의 자유, 장애인의 이동권은 물론이고 먼 곳의 전쟁과 학살은 그래서 퀴어 축제의 중요한 이슈가 된다. 축제 참가자 일부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을 지나며 항의 행진에 동참했다. 그들의 오지랖은 우리 사회에 결여되어 있는 가치, ‘연대’에 다름없다.

9년 늦어진 신약 개발

후원을 하고도 시위의 대상이 된 곳은 또 있다. 글로벌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다.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의 개발사로 잘 알려져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길리어드의 또 다른 대표 품목,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치료제다. 대표적인 HIV 치료제 ‘빅타비’는 2023년 11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회사 매출의 절반 가까이다. 기존 치료제의 부작용을 개선한 성분을 바탕으로 한 제품이다. 그런데 이 개선된 성분을 진작에 발견하고도 길리어드가 제품 출시를 2015년까지 9년이나 연장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기존 성분의 특허가 2017년 만료되므로, 시장 독점을 최대한 오래 이어가기 위해 그 특허가 만료될 즈음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그동안 환자들은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신장이 망가지고 골다공증을 앓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2만 4천 명의 피해자들이 길리어드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착한 국가의 조건

이렇게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액션을 취하며 상업적, 정치적인 흠결을 가리고자 하는 행위를 ‘핑크워싱(pinkwashing)’이라고 일컫는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환경 보호에 적극 동참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그린워싱’과 닮은 개념이다. 전 세계적으로 핑크워싱의 대명사로 지목되는 곳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2006년부터 이스라엘은 정부 주도하에 해외에서 이스라엘의 이미지를 증진하기 위한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친화적 국가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실제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법적 탄압이 거의 없는 유일한 국가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양한 정체성의 덩어리다. 탱크가 진입한 라파 거리에도, 분명 성소수자가 있다.

가자지구의 무지개 깃발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작전지역에서 무지개 깃발을 펼쳤다. 한 이스라엘 군인이 “사랑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Love)”라고 적힌 무지개 깃발을 전쟁터에서 들고 찍은 사진이 SNS를 통해 유포된 것이다. 영국의 유명 각본가, 리 컨이 X에 게시했다. 숨어있는 가자지구의 성소수자 공동체에게 하마스로부터 자유로워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도 함께였다.

IT MATTERS

이스라엘은 정말 가자지구의 누군가를 해방시켰을까. 무지개 깃발 사진에 쏟아진 비난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이 있다. 1969년 6월, 술집에서 던져진 하이힐은 그 자리에 있던 성소수자를 해방시켰다. 지난 토요일, 을지로 거리를 가득 메웠던 행진이, 혐오의 메시지와 폭력의 위협 앞에 사랑을 외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 축제는 몇 가지에 항의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주었다. 동의할지의 여부는 각자의 판단이다. 단,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부정당해도 괜찮은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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