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코미디가 웃기지 않았던 이유

2024년 5월 31일, explained

피식대학이 꺾였다. 그들은 뭔가 오해했다.

피식대학 채널의 인기 콘텐츠인 ‘피식쇼’의 로고. 사진 : 피식대학
NOW THIS

유튜브 예능의 일인자로 꼽혔던 ‘피식대학’이 ‘나락 행’을 탔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발단은 지난 11일 공개된 ‘경북 영양군 영상’이다. 지역명이나 환경, 음식 등을 조롱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응이 거셌다. 구독자가 20만 명 가까이 이탈하면서 ‘300만’ 채널 반열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영상은 내려갔고 일주일 만에 사과문도 올라왔다. 하지만 구독자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WHY NOW

선 넘는 재미가 특징인 채널에 너무 점잖은 잣대가 적용된 것일까. 웃자고 만든 콘텐츠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까탈스러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 피식대학의 이번 콘텐츠는 유머와 풍자에 관한 깊은 오해에서 비롯했다. 쉽게 만들려 하다 삐끗했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혐오와 조롱이 돈이 되는 현재의 시스템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풍자의 의미

"풍자는 전통적으로 강자에 대항하는 힘없는 자의 무기입니다. 저는 오직 권력자만을 겨냥합니다. 풍자가 힘없는 자를 겨냥할 때 그것은 잔인할 뿐만 아니라 저속합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이자 작가, 정치 평론가였던 몰리 아이빈스가 이야기한 ‘풍자’의 정의다. 아이빈스는 텍사스 출신이었다. 텍사스 지역의 정치인들과 정책들을 재치 있게 풍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퓰리처상 후보로도 세 차례 지명되었지만, 수상에 이르지는 못했다. 주요 타깃 중 한 명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생전에 사이가 돈독했을 리는 없겠지만, 아이빈스의 사망 이후 부시 전 대통령은 아이빈스의 신념과 표현력을 존중한다고 밝힌 바 있다.

피식대학의 오해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 작품상을 수상한 주인공은 피식대학이었다. 유튜브 채널로서는 처음이다. 지상파 방송국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문을 닫고, 젊은 코미디언들이 대중 앞에 설 곳이 없어지면서 유튜브는 훌륭한 무대가 되었다. 좋은 발상과 재능이 있는 코미디언이 주목받게 되었다. 피식대학도 마찬가지다. 멤버 이용주는 백상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우리의 코미디’를 하기 위해, 스스로 우리만의 판을 만들었다”며 위험을 감수하고, 장벽을 부수고,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영양군 영상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유럽인이 아프리카를 바라봤듯

영양군 콘텐츠가 담고 있던 것은 노골적인 수도권 우월주의였다. 우리나라를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구분 지어 지역에 따른 상대적 우월감을 강조하는 감수성이다. 그들의 언어는 지역의 모든 것을 서울과 서울발 브랜드의 하위 호환으로 규정짓는다. 동네 제과점의 햄버거빵을 ‘롯데리아’와 비교하거나 로컬푸드 직매장을 ‘더 현대’라며 비꼬는 식이다. 이들의 개그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생경함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 서울이 되지 못한/않은 지역의 삶을 서울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오만함이 그 정체다. 그들은 대체 무엇에 도전한 것인가.

누구를 향할 것인가

피식대학의 콘텐츠 중에는 사회에서 ‘과장님’, ‘부장님’ 소리를 듣는 층에 대한 풍자를 담은 것들이 있다. 이들이 100만을 넘어 300만 유튜버로 뛰어오르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 권력을 향한 풍자는 사회적 무게추를 끌어 내리고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전복의 힘이다. 하지만 약자, 혹은 약하다고 간주하는 계층을 대상으로 한 우월감 놀이는 우리 사회에 이미 팽배한 힘의 논리에 올라탄 게으른 기획일 뿐이다. 그런 콘텐츠에 천착하다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낙타를 낙타라 하지 못하고

풍자는 어렵다. 사건의 맥락은 물론이고 부조리의 핵심을 꿰뚫어야 하니 재능도 노력도 필요하다. 게다가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5년, 낯선 호흡기 전염병 ‘메르스’가 국내에 유입되었을 당시 정부의 메르스 관련 정책을 풍자했던 개그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내놓은 메르스 예방법을 그대로 주워섬긴 것에 불과했다. ‘낙타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 고기나 낙타 우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MBC 〈무한도전〉도, KBS 〈개그콘서트〉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았다. 현장에선 이런 일에 쉬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코미디는 쉬운 길을 택했다. 이주 노동자나 돈 많은 중년 여성, 비만인 등을 조롱하는 웃음이다.

코미디의 수명

2019년, 〈개그콘서트〉는 1000 회 방송을 축하하는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수많은 유행어를 남겼던 전설적인 프로그램이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밝지 않았다. 약자 비하는 사실, 당시로서는 검증된 소재였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웃긴다는 경험이 20년 치 쌓여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도, 시대도 변화했다. 불편함을 느끼는 시청자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식상함이 도드라져 보이게 되었다. 옳지 않아서 웃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웃긴 얘기가 아니라서 웃지 않게 되었다. 제작진은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느꼈다. 결국 〈개그콘서트〉는 2020년 1050회로 종영을 결정한다. 그리고 지난 2023년 11월 부활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유튜브는 혐오를 팔고

조롱이든 풍자든, 지상파에선 ‘매운맛’이 힘들어 한계가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심의와 제재가 없는 유튜브 공간에서는 어떨까. 명확한 답은 모른다. 콘텐츠도, 수용자도 그 폭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다만 참고할 만한 연구 결과는 있다. 유튜브와 틱톡 알고리즘이 젊은 남성들에게 여성 혐오적인 내용이 있는 콘텐츠를 자동 추천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다. 알고리즘은 분열을 추천한다. 또, 사이버렉카가 사회적 혐오의 대상에 속하는 대상을 타깃으로 다룰 때 악플 생산이 더욱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즉, 사회적 대립과 갈등에 기인하는 혐오 정서가 사이버렉카를 통해 반향되며 증폭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사이버렉카가 직접 악의적인 표현을 한다고 해서 악플 생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IT MATTERS

결국, 사이버렉카의 콘텐츠는 혐오의 에너지를 보존하고 반향실 효과(echo chamber)를 일으키지만, 사이버렉카의 언행이 그 혐오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데에 기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혐오의 메시지는 결국 혐오하는 자들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로서 작동한다. 어떤 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사람이 모인다. 어떤 구독자에게 가 닿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만드는 쪽의 결정이다. ‘구독자들이 좋아하니 이런 콘텐츠를 한다’는 이야기가 어색한 이유다. 

피식대학의 조롱은 300만이 넘는 구독자 수를 고려했을 때 ‘구독자가 원하는’ 콘텐츠였다고 하기 힘들다. 게으르고 쉬운 기획임과 동시에 그들의 구독자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한 무능이었다. 유튜브는 통신의 영역이다. 주체는 글로벌 기업이다. 우리나라의 방송법에 규정된 심의나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심의에 기댈 수 없다면 품위에라도 기대야 하는 것일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품위가 작동하고 있다. 유튜브 생태계에서도 규모가 실현되면 시장의 원리가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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