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의 상속자들

2024년 5월 30일, explained

남아공 ANC의 30년 단독 집권이 끝나간다.

2024년 5월 25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ANC 집회에서 지지자들이 ANC 포스터로 햇볕을 가리며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사진: Chris McGrath,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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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총선이 5월 29일 치러졌다. 남아공 총선은 사실상 대선을 겸한다. 총선은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 방식이다. 유권자가 정당에 투표하고, 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원 400석이 분배된다. 그렇게 선출된 의원들이 대통령을 뽑는다. 통상 다수당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집권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과반 의석을 잃을 위기다.

WHY NOW

ANC는 1994년 치러진 남아공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에서 승리해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후 5번의 총선에서 모두 과반이 넘는 득표를 얻었다. 하지만 최근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이 4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 남아공 최초로 연립 정부가 들어설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만델라가 대통령에 선출된 1994년 선거 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다. 선거 결과는 6월 2일에 나온다.

ANC 30년

2018년 취임한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비리 문제로 물러난 전임 대통령 제이컵 주마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새벽’을 약속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 만연한 부패, 경제 위기, 인프라 붕괴로 남아공 국민 다수는 아직 한밤중이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후 30년이 지났다. 만델라의 상속자들이 남아공을 망쳤다. 남아공 국민은 ANC의 민주주의에 지쳐 가고 있다.

부패

ANC의 고질병은 부패다. 과거 소수 백인이 누렸던 특권을 소수 흑인이 나눠 가지고 있다. 만델라의 후계자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은 무기 거래 스캔들로 사임했다. 뒤를 이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국가 포획(State capture)’이라 불리는 국정 농단 스캔들로 사임했다. 부패 척결을 내걸고 집권한 라마포사 대통령 역시 개인 농장에서 정체 모를 돈다발이 나와 탄핵 위기를 겪었다.

범죄

치안도 불안하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7번째로 범죄가 많은 국가다.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보다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 20분마다 한 명씩 살인 피해자가 발생한다. 살인율이 2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살인 사건 해결 비율도 15퍼센트에 그친다. 범죄로 인한 비용이 GDP의 10퍼센트가 넘는다. 경찰이 역할을 하지 못하니 시민들이 순찰대를 꾸려 호루라기와 채찍을 들고 다닌다.

실업

남아공 노동 인구의 3분의 1이 실업 상태다. 실업률이 내전 중인 수단보다 높다. 청년 실업률은 올해 1분기 기준 45.5퍼센트다. 빈부 격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파르트헤이트로 흑인은 정치적 자유를 얻었지만, 경제적 자유는 요원하다. 남아공 인구의 81퍼센트가 흑인인데, 공교육이 무너져 실업과 빈곤이 흑인에게 집중된다. 백인 가구의 평균 소득은 흑인 가구보다 5배 높다.

경제

흑인 경제 육성 정책(BEE)도 실패했다. BEE는 정부 발주 사업에 참여하려는 기업에 흑인의 지분 참여를 요구하는 정책이다. 흑인 빈곤을 줄이겠다는 취지와 달리 소수의 흑인 엘리트를 위한 제도로 변질했다. ANC는 BEE를 통해 당 간부를 기업에 꽂았다. 국영 전력 회사에 석탄을 공급하는 계약도 최저 가격, 최고 품질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품질이 떨어지고 비싸도 정치적 연줄이 있는 사람이 따낸다.

인프라

남아공의 기형적인 입찰 방식은 국영 기업과 지방 정부를 황폐화했고, 결국 인프라 붕괴로 이어졌다. 국영 전력 회사가 운영하는 석탄 화력 발전소의 노후화가 심각한데, 증설은커녕 정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만성적 전력난을 겪고 있다. 전기가 모자라 매일 6~10시간씩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기를 끊는다. 수도 인프라도 낡았다. 물이 정수장에서 가정으로 전달되기도 전에 파이프에서 40퍼센트가 손실된다.

Z세대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1994년에 태어난 아이는 올해 서른 살이 됐다. 이들은 ANC에 대한 향수가 없다. 이들에게 ANC는 높은 청년 실업률과 범죄율, 일상이 된 정전과 단수,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당이다. 남아공 18~24세 청년의 3분의 1이 비민주적인 정부를 선호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지금 국가가 잘못됐다면 곧 민주주의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IT MATTERS

남아공 18~30세 인구는 1200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다. 인구 구조상 ANC가 혁신하지 않는 한 ANC의 지지율은 앞으로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다. ANC는 남아공에 민주주의를 가져왔지만, 민주주의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국가에 만연한 부패와 빈곤, 일당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실망은 포퓰리즘의 토양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도 백인 소유의 토지를 보상 없이 몰수해 흑인에게 분배하고, 은행과 광산을 국유화하는 공약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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