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가 넘친다

2024년 5월 29일, explained

기후 위기는 가면을 바꿔 낀다. 그 속의 민낯을 파헤쳐야 한다.

2023년 10월, 플로리다 마이애미 주민들이 막힌 정화조를 뚫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사진: Jahi Chikwendiu,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NOW THIS

폭우가 내린다. 파푸아뉴기니에는 대형 산사태가 났고, 브라질 남부 지역에서는 22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미국 남부 지역 주민들은 때아닌 정화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텍사스에서 캐롤라이나까지, 12개 이상의 검조소에서 해수면은 2010년 이후 최소 6인치 상승했다. 정화조에 보관됐던 폐기물이, 집 앞 수로로 유입될 가능성도 커진다. 역시 원인은 기후 위기다.

WHY NOW

언론이 말하는 기후 위기는 구체적이고 특정적이다. 폭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원숭이,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는 비행기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는 가면을 바꿔 끼고 다가온다. 문제는 경제적 투자로 번지고, 정치적 문화 전쟁으로 모습을 바꾼다. 한 지역의 어려움은 글로벌을 타고 전 세계의 혼란으로 확산한다. 기후 위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온다. 정화조 위기, 죽는 원숭이, 때로는 선거의 슬로건과 인종 갈등으로 말이다.

하수 폐기물

해수면 상승은 저지대의 섬만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남부,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화장실과 바닥 틈으로 솟아오르는 지하수를 우려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쓰레기는 물을 타고 거리로 흐른다. 정화조 때문이다. 정화조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건조한 토양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하수 수면이 상승하면서 토양이라는 완충장치가 사라지고 있다. 정화조는 성가신 모기의 집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20년 전과 비교해 무려 50일 빠르게 모기가 활동하고 있다. 수질을 모니터링하는 찰스턴 워터키퍼의 전무이사는 이런 기후 위기 시대의 정화조를 “땅속의 시한폭탄”이라 표현했다.

공중 보건

정화조 문제는 빠르게 공중 보건 문제로 번진다. 연방수질청이 1970년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애미 카운티 주변에 거주하는 80만 명의 사람이 하수도 인프라가 아닌 정화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수로 대부분에서 많은 양의 대장균이 발견되면서 마이애미는 수억 달러의 연방 자금을 사용해 새로운 폐수 처리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효과는 크지 않았다. 주민 대다수는 아직 문제의 정화조를 사용했다. 인프라가 취약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수면이 상승한다. 기후 위기의 미래를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던 과거의 정화조 시스템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할 힘도, 시스템도 갖추지 못했다. 노후는 가속된다.



마이애미는 문제의 정화조를 안정적인 하수도 인프라로 교체하려 한다. 물론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현재까지 100채가량의 주택이 개조됐다. 775채를 하수도 인프라에 추가로 연결하기 위해 마이애미는 공공 인프라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마이애미가 받은 연방 보조금은 2억 8000만 달러에 달한다. 2020년에는 정화조를 완전히 대체하는 데 4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 추산한 바 있다. 관계자는 정화조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자금의 출처를 식별하고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유색 인종

정화조 시스템의 붕괴는 공중 보건의 문제로 번지기 이전, 취약한 이들을 먼저 공격한다. 메릴랜드대학교의 토목 및 환경 공학 조교수인 앨리슨 레일리(Allison Reilly)는 역사적으로 흑인 공동체가 하수도 인프라보다는 정화조에 의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인종 차별적인 주택 및 토지 정책으로 인해 유색 인종 공동체는 해수면 상승과 홍수에 더욱 많이 노출돼 있다. 지자체의 하수도 인프라가 파손된다면 주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정화조가 고장나면 집 주인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취약한 곳에 사는 이들은 정화조 시스템을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데이 제로

해수면 상승만이 문제가 아니다. 멕시코에는 데이 제로가 다가오고 있다. 데이 제로는 도시의 수도꼭지가 모두 마를 정도로 물이 바닥나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0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주민들은 몇 달간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도시 전체의 물 공급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데이 제로를 둘러싼 다양한 캠페인과 정부의 노력으로 큰 위기는 극복할 수 있었지만, 마찬가지의 그림자가 멕시코에도 드리운다. 멕시코 주민들은 몇 주, 몇 달 동안 물 배급을 받고 있다. 멕시코는 케이프타운의 데이 제로 캠페인을 참고하려 한다. 남아공처럼, 물 부족 위기를 극복해 보자는 것이다.

신뢰

그러나 전문가들의 진단은 밝지 않다. 신뢰 부족이 그 이유다. 물을 아껴 쓰자는 메시지가 효과를 내려면 일단 주민들이 정부를 믿어야 한다. 실제로 당시 남아프리카의 대도시들은 정치적 문제로 인해 물 사용량을 줄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요하네스버그와 더반과 같은 대도시가 부패 스캔들로 지지를 잃은 아프리카 국민회의(ANC)의 통치를 받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부패한 정권, 나쁜 정부의 목소리를 믿지 않았다. 다음 달 투표를 앞둔 멕시코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멕시코시티의 지도자들과 연방 정부는 물 문제를 경시하고 있으며, 상대 후보들은 물을 선거의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데이 제로를 앞두고, 물은 정치적 갈등의 의사 표현 도구로 전락했다.

정치

플로리다주는 다가오는 7월 1일부터 주 해역에 해상 풍력 터빈을 건설하는 것을 금지하고 에너지 보존과 재생 에너지를 장려하는 주 정부 보조금 프로그램을 폐지한다. 주지사 론 드샌티스가 기후 위기를 언급하는 것부터가 워키즘의 시작이라 정의했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인으로서 워키즘은 배격의 대상이다. 기후를 둘러싼 문화 전쟁이라 표현할 수 있지만, 이런 갈등은 문화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마이애미의 정화조 폐쇄, 하수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자금 지출에서 연방정부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기후 위기는 계급적, 인종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의 글로벌은 공중 보건의 문제를 지역의 문제로 한정하지 못하게 됐다. 기후 위기는 얼굴을 바꾼다. 미래의 우리는 끊임 없이 기후 위기의 다른 얼굴을 마주하며 결정하고, 선택할 것이다.

IT MATTERS

정치는 기후에 관한 의제를 꺼내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적과 동지를 나눈다. 전 세계인은 남반구와 북반구로, 계급과 인종으로 산산이 쪼개지고 있다. 늘어나는 기후 난민은 생존에 앞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의 표면을 봐서는 안 된다. 그 가면 속 민낯에는 갈등과 불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파편적인 피해 사례와 무관해 보이는 정치적 결정을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의 핵심을 기후라는 통합적 프레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정화조 문제는 인종이라는 사회적 갈등으로도, 때로는 연방 자금이라는 정치적 이슈로, 또 때로는 오염이라는 전통적인 환경 이슈로도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의 가면에 맞서 먼저 없애야 할 것은 경계와 구분이다.

한국에서도 매년 물은 폭우로, 산사태로, 때로는 가라앉는 반지하와 정치인의 망언으로 모습을 바꿨다. 유난히 덥고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 될 예정이다. 물은 흩어지다가도 다시 모인다. 우리가 빗물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그 장력이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