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저스틴 비버의 죽음

2024년 5월 28일, explained

영화에 얼굴을 비춘 미군 조력자가 탈레반에 의해 희생되었다.

2023년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레트로그레이드(Retrograde)〉 상영회에서 매튜 하이네만 감독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Vivien Killilea/Getty Images for Disney+
NOW THIS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람이 죽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던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 베레모’를 도왔던 지뢰 제거 요원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헤어 스타일 덕에 ‘저스틴 비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미군은 지난 2021년 철수했다. 탈레반 정권은 기어코 그를 찾아냈다. 수백 명의 보복 살해 희생자들처럼, 잔인한 고문 끝에 아프가니스탄의 저스틴 비버는 숨졌다.

WHY NOW

문제는 이 희생자가 2023년 에미상 3개 부문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레트로그레이드(Retrograde)〉에 얼굴을 비춘 출연자였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저스틴 비버의 얼굴은 클로즈업되었고, 탈레반은 이를 이용해 희생자를 특정하고 체포했다. 다른 출연자도 위험에 처해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쟁과 사건이 콘텐츠가 된 지는 오래다. 여전히 그래도 되는지, 질문이 필요하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

〈레트로그레이드〉 제작진이 본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 현지 촬영을 시작한 것은 2021년 1월이었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기다. 지뢰 제거 요원 중 일부는 촬영에 대해 불안감을 표시했지만, 결국 동의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같은 해 4월,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발표한다. 20년을 끌어온 전쟁이 하루아침에 끝났다. 5월부터 시작된 철수와 함께 아프간 정부는 주요 도시를 탈레반에 속속 내주게 된다. 이윽고 8월이 되자 수도 카불도 탈레반 치하로 넘어간다.

배신자가 된 사람들

그런데 20년간 전쟁을 치르며 미군을 도왔던 사람들, 아프간 정부에 협조한 인사들이 위험에 처했다. 2021년 7월 2일, 미군이 카불 근방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완전히 철수하자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일부는 어떻게든 구조되었다. 한국에 협조했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기여자’라는 이름으로 한국 땅을 밟았던 것이 그 예다.

절망의 클로즈업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은 숨어들었다. 과거를 감추고 숨죽였다. 그들의 인생이 달라진 것처럼, 다큐멘터리 〈레트로그레이드〉의 방향도 바뀌었다. 철수 과정의 절망이 생생히 담겼다. 미군이 철수 결정을 알리자 한 아프가니스탄인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지뢰 제거 요원 ‘저스틴 비버’는 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영화는 호평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패배로 치닫는 전선의 모습을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표현해 냈다”며 극찬했다.

다큐멘터리의 명가

하지만 탈레반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살생부였다. 2023년 1월 17일, 영화가 공개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레트로그레이드〉 제작사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자신이 영화에 출연했다며 매우 심각한 이유로 감독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스틴 비버가 보낸 이메일이었다. 이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기 이전, 몇몇 미군 측 인사들이 우려를 표하며 모자이크 처리 등을 요청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영화는 수정 없이 공개되었다.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 영화는 현재 모든 OTT 서비스에서 사라진 상황이다. 서구 사회의 찬사를 받았던 〈레트로그레이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작하고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스트리밍됐다.

목숨을 걸고 만든 영화의 가치

영화를 연출한 매튜 하이네만 감독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결정을 비난한다. 다큐멘터리는 전쟁 보도의 일반적인 관행을 따랐으며, 탈레반의 보복은 이 영화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내린 것이 저널리즘의 생명력을 약화할 뿐이라고 감독은 주장한다. 하이네만 감독과 함께 작업한 바 있는 한 제작자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업계가 “유명인을 출연시킨 홍보물이나 무분별한 실화 범죄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며, 정작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 문제가 외면 당하는 가운데 이번 일이 발생했다고 우려했다.

예능과 다큐 사이

우려라기 보다는 사실이다. 유료 회원만을 대상으로 공개되는 다수의 ‘OTT 표 다큐멘터리’의 경우, 작품성은 둘째 치고 엽기적인 범죄를 여과 없이 재현하며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처럼 그리는 등 지나친 상업주의로 이미 비판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 2020년에 처음 공개된 〈타이거 킹〉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미국 오클라호마의 사설 동물원에서 호랑이와 사자로 돈을 버는 인물과 동물보호단체 대표의 갈등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자극적 묘사와 인신공격에 가까운 주장을 여과 없이 담아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 화제를 모은 것은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었다.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선정적인 부분이 강조되며 피해자의 인권 문제, 아동 및 청소년 등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책임의 정의

쉽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레트로그레이드〉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미국 사회에 긍정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값진 성과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의 책임’에는 ‘잘 만드는 것 이상’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글로벌 영상 제작 기업인 C&I Studios는 지난 2023년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작자의 윤리적 책임〉이라는 원칙을 공개했다. 정확한 정보 전달, 과도한 감정 자극 피하기 등과 함께 ‘비공개 인물 보호’라는 항목도 포함되었다. 물론, 강제성이 있는 원칙은 아니다. 한 회사의 방침일 뿐이다. 영상 기록을 통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권 단체 ‘WITNESS’도 관련 영상 취재를 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역시 한 단체의 ‘가이드’일 뿐이다.

IT MATTERS

일각에서는 ‘OTT 저널리즘’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경계는 흐릿하고 유동적이다. 저널리즘의 영역이기 때문에 규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방송법 바깥의 OTT 콘텐츠는 국경을 초월한 ‘표현의 자유’ 영역에 놓여있다. 책임감을 덜어놓고 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레트로그레이드〉는 책임감을 갖고, 생명의 위험까지 끌어안고 만든 영화다.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제작진은 영화의 선한 영향력을 먼저 봤겠지만, 그 뒤의 사람은 보지 않았다. 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킨 것일까, 외면한 것일까.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획으로 호평을 받았던 닷페이스의 구성원들은 지난 2022년 서비스 종료를 알리는 영상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멋있게 잘 보여주자고 생각해서 우리가 했던 일들이 이 사람한테 위험까지 감당하게 하는 일이 된 건 아닌가” 고민했다고 털어 놓았다. 사람에 공감하는 저널리스트가 짊어지는 무게다. 누군가는 그 무게를 전혀 알지 못하고, 누군가는 그 무게를 짊어지느라 빠르게 꺾인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