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의 외주화

2024년 5월 22일, explained

영국이 난민을 르완다로 보낸다.

2024년 3월 6일, 약 65명의 난민을 태운 고무 보트가 영불 해협을 건너고 있다. 사진: Dan Kitwood/Getty Images
NOW THIS
 
오는 6월, 혹은 7월부터 영국에 도착한 망명 신청자는 6400킬로미터 떨어진 아프리카의 르완다로 보내질 전망이다. 그곳에서 망명 신청을 심사한 후, 받아들여지면 르완다 현지에 정착하게 된다. 소형 선박에 몸을 싣고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난민들을 막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영국 정부는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영불 해협을 건너려다 배가 가라앉으면서 난민들이 사망하는 참변이 반복되어 왔고, 이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인도주의적’ 이유를 강조한다. 실제로 이 ‘르완다 법’이 통과된 직후, 영국으로 향하던 보트가 가라앉았다.

WHY NOW
 
이 법은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가 직접 발의했다. 그리고 ‘망명의 외주화’라는 상상력은 이제 현실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환대의 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친 사람들이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다면, 이 지구상에는 절망의 영토만이 확장을 거듭하게 된다. 그럼에도 영국은 르완다 법을 밀어붙였다. 그 이유와 과정, 예상되는 결과를 살펴보면 민의와 정치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외주화의 시작

이민자를 막아내겠다는 영국 보수당의 공약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2016년 브렉시트(Brexit)를 추진하던 당시 핵심적인 이슈 중 하나였고,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2021년 망명 신청자를 해외로 송환하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기간 소강상태를 보이던 망명 신청자의 수가 급증하면서 보수당 지지층의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순탄하지는 않았다. 먼저 이들을 받아 줄 국가를 찾아야 했고, 다음으로는 각종 법적 규제를 뚫어야 했기 때문이다.

멈춰 선 르완다행 비행기

난민을 받아 줄 국가는 찾았다. 2022년 4월 영국은 수억 달러의 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난민들을 르완다에 보내기로 합의한다. 법적인 문제도 해결했다. 같은 해 6월 르완다로 향하게 될 첫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했다. 그러나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기어이 그 이륙을 막아냈다. 난민들을 생면부지의 땅인 르완다로 이송하는 것이 인권 유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영국 의회는 영국 정부가 ECHR의 긴급 조치를 무시할 권한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르완다가 망명 신청자에게 안전한 국가임을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르완다 법’을 통과시킨다. 올해 4월 22일의 일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선거

상식을 뒤집는 르완다 법에 당연히 반발이 뒤따르고 있다. 이미 각종 인권 단체는 물론이고, 유엔 난민기구(UNHCR), 영국 대법원, 찰스 국왕 등이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수낵 총리는 안되는 것을 되게 만들었다. 이유는 곧 닥쳐올 선거다. 오는 하반기 치러질 총선에서 수낵 총리의 보수당은 참패할 예정이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로는 그렇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에 20퍼센트포인트 안팎으로 앞서고 있다. 실제로 총선의 전초전으로 꼽힌 지난 5월 2일 지방 선거에서 보수당은 참패했다. 수낵 총리의 마음이 다급할 수밖에 없다.
 
애매한 성과

수낵 총리는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사상 최단임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던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취임한 후,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오로지 추락하는 영국 경제를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영국의 치솟는 인플레이션, 고공 행진을 거듭한 금리, 그럼에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기는 수낵 총리가 아닌 그 전임 총리들의 정책 결과였다. 수낵은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 해 냈다. 11퍼센트대를 기록했던 물가상승률을 3.2퍼센트까지 끌어내렸다. GDP 또한 마이너스 성장의 수렁을 벗어났다.
 
한 방을 노린다

하지만 부족하다. 삶이 나아졌다는 체감을 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금수저 이미지를 벗고 유권자와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당내 입지도 불안하다. 한 방이 필요하다. 보수 지지층의 가장 큰 불만인 의료 시스템 붕괴와 이민자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르완다 법은 그래서 수낵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미션이다.
 
돈 계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런데 르완다 법은 너무 비싸다. 영국 정부가 난민 신청자들의 국내 임시 체류에 사용하는 금액은 연간 30억 파운드다. 국내외 비난에도 불구하고 난민을 바다 위 바지선에 머물게 한 이유다. 그렇다면 르완다에 이들을 보내면 얼마나 들까. 영국 정부는 2024년 말까지 르완다에 3억 7000만 파운드, 약 4억 5700만 달러를 지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까지 이 지원금은 2배가량 늘어난다. 난민을 태운 항공편이 취항하게 되면 정책 수행에 드는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난민 한 명당 17만 파운드씩을 르완다 정부에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르완다로 망명 신청자를 보내는 데에 한 명당 6만 3000파운드가 더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유럽의 분위기

돈 계산만 놓고 보면 영국의 결정은 불합리적이다. 서민의 일상을 나아지게 만들 법안이라 할 수 없다. 르완다 법은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망명의 외주화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다. 1650만 달러를 지급하고 알바니아에 난민센터를 설립해 망명 신청자를 보내기로 했다. 오스트리아도 난민을 제3국으로 이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망명의 외주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이 힘을 얻고 있다.

IT MATTERS
 
르완다 법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도 튀었다. 영국에 머물던 난민들이 르완다행을 두려워한 나머지 다시 국경을 넘어 아일랜드로 향하고 있다. 급증하는 난민들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소요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이민자를 제3국으로 추방하는 정책을 추진할 전망이다. 영국의 르완다 법이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분석이다.

유럽의 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반이민 정서도 경제적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난민을 막아서는 정책은 경제적 결론이 아니라 정치적 결론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민심의 분노가 겨냥할 과녁을 세운 것이다. 혐오를 먹이 삼아 정치가 자라고 있다. 정치라 불러서는 안 될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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