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직구 대란

2024년 5월 20일, explained

지난 주말 사이 소비자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알리익스프레스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알리바바 그룹의 본사 전경. 사진 : Costfoto/NurPhoto via Getty Images
NOW THIS

정부가 직구를 막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상이 된 것은 전기 및 생활용품, 생활 화학제품, 어린이용 제품 등 80여 개 품목이었다. 국내 안전 인증인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인 경우에는 직구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당장 6월부터, 개시일을 보름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사흘 만에 뒤집혔다. 거센 반발이 나오자, 발표 내용이 모호했다며 정부가 유해성을 확인한 제품만을 걸러내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WHY NOW

사흘간의 해프닝으로 끝난 이번 ‘직구 사태’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겼다. 정부는 이번 직구 금지 조치에 힘을 줬다. 관세청도 아니고, 중소벤처기업부나 산업통상자원부도 아니고 국무조정실의 국무2차장이 직접 브리핑에 나섰다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무조정실은 사실상 국무총리실이다. 부처를 초월한 범정부 차원의 사업을 지휘, 총괄한다. 국조실 차장은 차관급이다. 하지만 결과는 보잘것없었다.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정부는 너무나 위험하다.

왜 못 사게 하나

사달이 난 것은 지난 5월 16일이었다. 정부의 발표와 보도자료가 나오기 무섭게 IT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노트북 등 전자제품의 수리를 위해 아마존, 알리 등에서 직구해 사용하던 부품을 이제 구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키덜트 커뮤니티, 값비싼 유아용품 직구 정보가 공유되던 맘카페도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골프채는 놔두고 유모차를 막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KC 인증

소비자가 분노한 주요 지점 중의 하나가 바로 KC 인증이다. 전파 인증, 전기 안전 인증, 정수기 검사필증 등 다양한 분야의 안전, 환경,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13개 인증을 하나로 묶었다. 국내 정식 출시하는 제품이라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지 못했다면 고지한 품목에 대해 직구를 막겠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골자였다. 사실, 이런 조치를 예고하는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정책의 노림수

바로 알리와 테무의 공습이다. 원래 해외의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행위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엄연한 수출과 수입이므로 금액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의 통관절차라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물류와 통신의 발전으로 이 복잡한 과정이 흐릿해졌다. 중국발 이커머스는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삼아 ‘싸게 구입하고 쉽게 버리는’ 문화에 올라탔다. 전 세계의 유통이 거대한 변화에 직면했다.

독성 물질이 검출된 아기 옷

특히, 소비자 피해가 커다란 이슈로 부상했다. 직구한 제품의 품질이 조악해 사용하지 않고 버리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안전을 위협받을 정도의 유해한 물건도 여과 없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다. 대책은 뾰족하지 않다. 여기에 국내 중소 유통 업체들도 타격을 입었다. KC 인증 등 정식 절차를 거쳐 물건을 수입하면 비용이 든다. 가격으로 알리나 테무와는 경쟁이 될 수 없다. 이러다 망하겠다, 역차별이라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니 제대로 인증 받은 제품이 아니면 직구를 막겠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방법이 틀렸다

그런데 타당하지 않다. 먼저, 인증에 대한 불신이 높다. 이 KC 인증을 획득하려면 웬만한 품목의 경우 돈도 100만 원 넘게 들고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상 개인이 인증 받기란 불가능하다. 웬만한 중소기업도 인증 과정에 가로막혀 제품 출시가 제때 되지 못하는 지경이다. 비싸고 오래 걸리면 검사 결과라도 철저해야 한다. 그러나 유해성이 있음에도 KC 인증을 받아 판매되다 소비자 피해를 초래한 경우가 적지 않다. 5천 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지난해 12월부터 정부는 KC 인증 기관을 민간 영리법인으로 확대하는 규제 개선 과제를 추진 중이다. 인증 기관 민영화다.

한발 빨랐던 C-커머스

유통 업체 보호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이미 알리와 테무가 KC 인증 제품 확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정부의 직구 금지 발표 사흘 전의 일이다. 똑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수입 업체가 달라지면 KC 인증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만 개 수입해서 파는 업체도 열 개 수입해서 파는 업체도 똑같이 150만 원을 들여야 한다. 국내에 물류 센터 건립까지 검토하고 있는 중국발 유통 공룡 알리와 테무 입장에서 KC 인증은 별로 커다란 걸림돌이 아니다. 어차피 한 번 돈 내고 많이 팔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비자 입장에서는 미국과 유럽 등의 인증을 거쳐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임에도 KC 인증이 없어 구하지 못하니 비슷한 제품을 알리와 테무에서 찾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연구 및 개발 분야에서도 각종 부품류 등을 구매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총선 이후 그 정치인의 첫 마디

주말 사이 소비자의 불만이 끓어오르자, 정치권도 목소리를 보탰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에서는 물론이고 여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KC 인증 의무화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고,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무식한 정책”이라며, 선택의 자유가 줄어들면 시장경제의 장점도 줄어든다고 일침을 가했다. 결국, 직구 금지 계획은 사흘 만에 뒤집혔다. 주말이었던 지난 19일,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었다. 안전성 조사 결과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해 나갈 것이라며, “해외 직구 원천 차단 계획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IT MATTERS

이번 사태로 고쳐야 할 점이 드러났다. 작게는 KC 인증 제도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해외의 비슷한 인증과 호환이 되지 않아 한국 제품의 ‘갈라파고스화’를 부추겨왔다. 수출 기업의 경우 KC 인증을 받았어도 이중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수입 업체는 똑같은 제품이 국내에서 인증을 이미 받아 버젓이 팔리고 있는데 비싼 비용을 들여 인증을 또 받아야 하는 비효율을 감당했다. 중소기업은 인증을 신청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 발 빠른 제품 출시를 할 수 없었다. 신뢰도는 떨어졌고 인증 기관 민영화로 안전 인증의 국가 책임 또한 외주화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기밀에 해당하는 기술을 민간 인증 업체에 공개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더 크게 고쳐야 할 점은 정부의 인식과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2023년 온라인 해외 직구 구매액은 6조 7567억 원이다. 중국발 이커머스의 공습으로 무역 장벽을 세우고자 했던 의도는 보이지만, KC 인증을 이용한 직구 차단은 적합한 방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호주의 원칙을 따르는 외교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수출 업체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경제 원칙은 시장경제와 건전재정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경제 원칙은 이번 발표에 없었다. 게다가 국조실을 통해 나온 정책이 사흘 만에 쉽게 뒤집힌 것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적은 불확실성이다. 정부 정책이 불확실성을 키운 꼴이다. 원칙과 철학이 없는 정책은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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