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가?” 모든 스타트업에게 주어지는 빅퀘스천입니다. 미디어 스타트업인 북저널리즘 역시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정작 평소엔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매일매일의 질문들에 답을 하느라 빅퀘스천에 대답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2021년을 마무리하고 2022년을 시작하는 시기만큼은 북저널리즘도 빅퀘스천과 씨름해볼 짬을 냈습니다. 화두는 “우리는 2022년에 세상에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었죠. 역시나 “과연 저널리즘은 세상 사람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벌써 22년째 찾고 있는 답인데도 매년 실패합니다. 어쩌면 답도 없는 질문에 답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도 뉴미디어에서도 답을 찾는 건 역시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나름의 이론은 있습니다. 질량감 이론입니다. 질량은 저널리즘이 제공하는 지식정보의 양과 질이 해당 미디어에 대한 저널리즘 수용자의 평가 지표라는 상식에 기초합니다. 진짜 고민거리는 질량의 기준입니다. 독자는 얼마나 많고 얼마나 깊은 스토리여야 만족하는가. 사실상 양은 넘치게 필요합니다. 다 보지는 못해도 못 보지는 않아야 합니다. 연말연초면 읽지는 않아도 읽어야 할 것 같은 양서를 주문하는 심리와 같습니다. 질은 안타와 홈런이 모두 필요합니다. 평균 타율을 유지하면서도 가끔씩 담장을 넘기는 장타력도 선보여야 하죠. 이걸 미디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나름 부릅니다. 미디어 경영을 프로야구팀 운영에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프로스포츠 가운데 경기횟수가 가장 많고 개인과 팀의 안타율과 장타율에 시즌의 승률이 좌우되는 통계 스포츠라는 점에서 미디어는 야구와 여러모로 닮아 있습니다. 〈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가 했던 고민과 미디어 스타트업의 경영진의 숙제는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레서피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질량 이론이 아니라 질량감 이론인 이유입니다. 여기서 감은 공감입니다. 미디어는 세상의 사실과 진실과 맥락을 분석하고 통찰하고 전망하는 비즈니스입니다. 한없이 차가울 것만 같죠. 아닙니다. 미디어의 목표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바꿔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경제학자인
리차드 탈러는 행동경제학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는 고전 경제학의 가설을 깼습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신성을 깨는데 대략 40년 정도 걸렸죠.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은 비이성적 충동에 휩쓸리는 말 그대로 인간적 존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미디어 역시 이성적 독자라는 가설을 버려야만 합니다. 독자가 어떤 미디어를 구독하는 건 단순히 질량 보존의 법칙 때문만이 아닙니다. 미디어와 독자가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를 지지하기 때문이고 독자를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CBS 〈
김현정의 뉴스쇼〉의 DJ 김현정 PD가 직접 들려줬던 말이 있습니다. “유력 정치인 인터뷰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마이크가 없어서 세상에 이야기를 전할 수 없는 분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줄 때가 가장 보람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화제의 인터뷰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한 평범한 가장처럼 보통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도와준 이야기를 듣는 시간입니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는 건 대선 주자 인터뷰일지 모릅이다. 〈김현정의 뉴스쇼〉의 오랜 청취자들이 애정하는 코너는 화제의 인터뷰입니다. 이런 게 질량감입니다. “스타트업이 세상 사람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미디어 스타트업에선 “미디어가 어떤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어떤 독자와 연결되고 연대하고 유대하고 교감하고 공감하냐가 중요합니다. 질과 양과 감으로요. 북저널리즘은 독자 여러분과의 질량감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