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 미 이프 유 캔[2]
1935년 11월 22일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만에선 날개폭만 40미터에 무게만 25톤에 달하는 수륙 양용 비행기 한 대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의 이름은 차이나 클리퍼였습니다.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 소속의 항공기였죠. 팬암은 우리한텐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익숙합니다. 천재 사기꾼 디캐프리오는 팬암의 파일럿으로 위장해서 전 세계를 누비죠. 팬암의 창업자는
후안 트립입니다. 오늘날 항공 산업이 존재하게 만든 혁신가죠. 무엇보다 후안 트립은 태평양 노선을 개척했습니다. 지금이야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을 오가는 태평양 횡단 미주 노선은 일상입니다. 대한항공만 해도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씩 오가죠.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비행기로 아시아까지 간다는 건 미친 생각이었습니다. 후안 트립은 항공기로 세계를 여행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자면 태평양 노선을 반드시 개척해야만 했죠.
86년 전 후안 트립의 차이나 클리퍼가 태평양을 향해 이륙하는 장면은 리처드 브랜슨의 유니티가 우주를 향해 발사되는 장면과 너무도 닮은꼴입니다. 후안 트립 역시 차이나 클리퍼의 이륙 행사를 거대한 쇼로 기획했죠. 루스벨트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왔죠. 차이나 클리퍼의 비행은 자칫 실패할 뻔했다고 합니다. 중량이 너무 무거워서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위로 넘지 못하고 아래로 날아야만 했거든요. 버진 갤럭틱 역시 2014년에 대형 사고를 겪었습니다. 조종사 한 명이 사망했죠. 리처드 브랜슨과 마찬가지로 후안 트립 역시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팬암은 항공 여행 시대를 열었죠. 누가 비행기를 타고 해외 관광을 가느냐는 시대에서 누구나 비행기를 타고 해외 관광을 가는 시대로 세상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세상이 구조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상전이라고 합니다. 바이오테크 기업 신타제약을 창업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통령 과학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사피 바칼이 저서 《
룬샷》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물이 얼음이 됐다 다시 물이 되는 것처럼 자연계에서 어떤 물질의 상태가 구조적으로 바뀌는 현상을 상전이라고 합니다. 사피 바칼은 이걸 비즈니스 분석에 접목했죠. 사피 바칼은 《룬샷》서 후안 트립이 팬암으로 항공 여행 시대로의 상전이를 일으켰다고 분석했습니다.
리처드 브랜슨 역시 상전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누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 관광을 가느냐는 시대에서 누구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 관광을 가는 시대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죠. 후안 트립이 그랬던 것처럼 리처드 브랜슨 역시 룬샷을 꿈꾸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사피 바칼의 정의에 따르면, 룬샷은 주창자가 나사 빠진 사람 취급을 받으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우주 관광이나 태평양 노선처럼요. 문샷이란 개념도 있습니다.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가 문샷이죠. 구글은 한때 문샷 싱킹을 강조했습니다. 원대한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추진했죠. 문제는 문샷은 원대할진 몰라도 틀에서 벗어난 건 아니란 겁니다. 케네디가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문샷 싱킹을 했던 건 소련이 먼저 가가린을 우주에 보냈기 때문이었죠. 우주 정복 다음엔 달 정복은 꽤 원대해도 매우 현실적인 목표였습니다.
반면에 리처드 브랜슨과 후안 트립의 비전은 문샷이라기보단 룬샷입니다. 한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보다 인류 전체가 달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게 더 미친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후안 트립은
찰스 린드버그 한 사람만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인 전체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후안 트립은 린드버그와 평생 친구 사이였죠. 둘은 함께 대서양과 태평양과 남미 상업 노선을 개척했습니다. 후안 트립이 그랬던 것처럼 리처드 브랜슨 역시 우주 노선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공항에서 달까지 버진 갤럭틱을 타고 여행하는 스페이스 트레블 시대를 열고 싶어 하죠. 실제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
애드 아스트라>에는 지구달 노선을 오가는 우주 항공사 버진 갤럭틱이 등장합니다. 버진 갤럭틱에서 브래드 피트는 우주 기내식 서비스도 제공받죠.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진 않지만 운율은 반복된다.” 대문호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죠. 보통 정치나 외교 무대에서 주로 인용됩니다만 비즈니스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후안 트립의 룬샷이 세계 여행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그 운율에 맞춰서 리처드 브랜스의 룬샷에 우주 여행 시대를 열게 될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모두 우주여행을 한 번씩 꿈꿔보는 시대로 상전이가 일어나기 시작한 건 분명하니까요. 25만 달러 그러니까 한화로 2억 8000만 원에 달하는 비싼 티켓값과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짧은 우주여행 시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후안 트립 역시 팬암으로 전 세계 항공 여행 시장을 장악하는 데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팬암은 보잉과 록히드 같은 항공기 제조사들의 기술 혁신을 유도했습니다. 프로펠러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의 혁신은 제조사가 아니라 항공사가 주도한 결과입니다. 보잉이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보잉 707을 개발한 건 팬암이 그런 항공기를 주문했기 때문이었죠. 수요가 공급을 견인할 때 혁신의 수레바퀴도 빨라집니다. 우주 항공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 관광 수요가 확인되고 늘어나면 우주 항공 기술도 발전하고 발달할 겁니다. 오늘날 체육복 바람으로도 여권만 들고 탑승 수속만 밟아서 비행기만 타면 하루면 다른 대륙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조만간 별다른 준비도 없이 우주선만 타면 하루 만에 우주 관광을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인터컨티넨털 여행과 인터갤럭틱 관광을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유럽 여행을 가는 길에 우주 공간을 들렀다 가는 식이죠. 수요만 생겨난다면 공급이야 얼마든지 따라줄 수 있습니다. 버진 갤럭틱의 티켓은 이미 600명이 구매했습니다. 이미 1억 5000만 달러의 매출이 확보됐단 뜻이죠. 그 중엔 명예 팬암 파일럿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있죠. 이것이 시장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