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두리안, 커피

2024년 5월 10일, explained

우리의 식문화는 비극을 품고 있다.

1939년 뉴욕의 한 에스프레소 바에서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이탈리아 학생들이 커피를 즐기고 있다. 사진: Underwood Archives/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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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이 뜨자 커피 가격이 오르고 있다. ‘과일의 왕’으로 불리는 두리안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베트남의 커피 농장들이 두리안 재배 쪽으로 업종을 변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커피 농가가 주로 생산하는 로부스타 커피는 지난 4월 말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톤(t)당 4천5백 달러를 돌파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WHY NOW

두리안이 만들어낸 도미노가 커피 가격을 위협한다. 의외라서 더 눈길이 가는 연쇄 작용이다. 그러나 전혀 달라 보이는, 상관없어 보이는 두 식품은 같은 비극을 품고 있으며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모두,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RCEP과 두리안

중국인들은 원래 두리안을 사랑했다. 부자들이 먹는 과일, 품위 있는 선물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비싼 체리를 고민 없이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중국에서 경제적 자유를 상징했던 ‘체리 프리덤(cherry freedom)’이라는 말이 이제는 ‘두리안 프리덤’으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중국에서는 두리안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도시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런데 두리안 수요는 이제 중소도시 곳곳으로 퍼졌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덕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 간에 관세 장벽이 낮아지고 세관 절차도 간소화된 것이다. 아세안 국가에서 재배되는 두리안이 중국으로 쉽게 들어가게 되었다는 얘기다.

우루과이 라운드와 바나나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바나나다. 우루과이 라운드 무역 협정으로 인해 1991년 바나나 수입제한이 풀리면서 공급이 폭증했고 가격은 내려갔다. 이전까지는 고급 과일이었던 바나나를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자 수요는 오히려 치솟았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가 바나나 맛을 알게 된 이후 그 수요를 떠받쳐 온 것이 필리핀의 플랜테이션 농업이다. 옥수수와 쌀 등 주민들의 식량을 생산하던 곳을 밀어버리고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여 바나나 나무를 심었다. 주민들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생산한 바나나를 전 세계가 사 먹는다.

호랑이를 몰아내는 힘

두리안도 마찬가지다. 물론 바나나보다는 고가에 호불호도 갈려 시장은 중국으로 집중된다. 하지만 아세안 국가 입장에서 중국은 엄청난 시장이다. 게다가 아직 중국에서 두리안을 맛본 인구의 비중은 5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무궁무진한 잠재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리안 최대 생산국인 태국에서는 다른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훨씬 이익이 되는 두리안 나무를 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무분별하게 두리안 재배지를 확대하면서 말레이시아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는 숲까지 두리안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말레이시아 호랑이는 ‘중대한 멸종위기종’이다.

침묵의 살인자

그런데 태국이 올해 폭염과 가뭄으로 두리안 농사를 망쳤다. 동남아시아 전역을 덮친 엘니뇨 현상이다. 여름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태국에서만 50여 명이 숨졌다. 세계기상기구는 이번 폭염을 ‘침묵의 살인자’라 정의했다. 폭염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지만, 가뭄까지 겹치며 심각한 경제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침묵의 살인자 때문에 중국인이 소비하는 두리안의 90퍼센트를 책임졌던 태국산 상품이 품귀 현상을 빚었다. 베트남과 같은 다른 국가에서 두리안 재배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커피 농장이 두리안 나무를 심는다. 재배 면적이 줄었는데 기후 재난까지 겹쳐 커피 수확이 더 줄어든다. 원두 가격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

바나나와 두리안, 커피는 공통점이 있다. 2020년 유엔식량농업기구 데이터 기준으로 커피콩 생산 상위 10개국을 살펴보면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페루, 온두라스, 인도, 우간다, 과테말라다. 커피 수입 상위 10개국을 살펴보면 미국,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러시아, 캐나다, 한국, 영국이다. 어딘가 닮은 듯 한 세 작물은 생산하는 국가와 즐기는 국가 간의 온도 차가 극명하다.

이디야 위기의 원인

커피 없이는 못 사는 한국인 사이에도 온도 차는 있다. 최근 국내 커피 전문점 시장에서 이디야의 몸집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1500원짜리 저가형 커피와 6000원짜리 스페셜티 커피 사이에서 3200원의 이디야 커피는 명확한 타겟층을 잃어버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속도, 취향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지난해, 역대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취향의 양극화는 소득의 양극화를 반영한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2021년 대비 2023년, 가난할수록 더가난해지고, 부자일수록 더  더 부자가 되었다.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1분위의 소득은 감소하고,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4분위와 5분위는 소득이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양극화가 담겼다.

양극화의 맛

이 양극화는 맛에서도 차이가 난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 원두는 로부스타 품종이다. 병충해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 재배하기 쉽고, 생산량도 많다. 그래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 쉽게 말하면 ‘믹스 커피’용이다. 가격이 오르면 ‘맥심’과 ‘레쓰비’가 비싸진다. ‘아메리카노’용 원두는 따로 있다. 아라비카 품종이다. 향미가 풍부하며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 주로 생산된다. 가격이 오르면 스타벅스 메뉴가 비싸진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저가형 커피 매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로부스타 품종을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로부스타 원두 가격마저 급등하면서 타격이 커졌다. 최근 ‘더벤티’, ‘더리터’, ‘하삼동커피’ 등이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미 양극화된 커피 시장에서 물가의 타격을 먼저 받는 것은 저가형 커피 쪽이다

IT MATTERS

올해 들어 로부스타 원두의 가격이 치고 올라오며 그 차이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라비카 원두의 가격도 지속해서 상승 중이다. 주요 원인은 역시 기후 위기다. 특히 전 세계 커피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의 경우 2020년엔 가뭄이 2021년엔 이상 저온으로 생산량이 급감하며 커피 가격이 치솟은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매일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도 이 기후 위기를 만든 원인 중 하나다. 커피는 멀리서 온다. 열대 우림을 잡아먹고 생겨난 커피 농장에서 수확된 원두가 전 세계로 운송되며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 커피 한 잔이 머금은 물은 130리터다. 커피를 끊고 지친 오후를 버티기란 힘들겠지만, 바나나도, 두리안도, 커피도 알고는 먹어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를 바꿀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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